대한민국의 보물을 내 가슴에.

흙에서 빚은 천년의 미학, 한국 도자기의 위엄

by 한정호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잊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한 곳 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이다.. 이 번 방문에는 봄을 맞아 야외에서 ‘소통과 화합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결코 가볍거나 작지 않은 작가들, 음악가들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봄 날의 따사로운 햇살을 등에 업은 호수위에 잔잔하게 튕겨주는 봄바람의 물결은 주위에 앉아 호수를 보는 것 만으로도 머리속이 리셋되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호수 '용의 연못' 또는 '용지(龍池)'

이 곳 국립박물관은 특별행사가 있건 없건, 봄, 여름 가을 겨울 개절의 구분없이 언제든 방문을 하던 부담이나 걱정이 없다. 항상 그 안에는 수많은 보물과 국보들이 내 눈과 마음을 놀래켜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전시관을 들어 서면서 오늘은 백제의 금동대향로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백제관을 들어서자 내 눈에 보이는 조각품은 모형으로 만든 것으로 아예 직접 손으로 만져보시고, 느껴보세요 라며 홍보도 하고 있었다.

백제 금동대향로 모형물 전경

‘분명 어느 박물관에서 진품을 보면서 감탄하던 기억이 있는데…’ 백제방을 살펴주시는 해설사 뿐께 이곳에 금동대향로 진품은 없냐고 물어보니 그것을 … 공주 박물관에 있다고 하신다. 아마도 내가 익산을 방문했을 때 박물관에서 보았던 기억을 여기에서 끄집어 낸 모양이다.


몇 달 전 베트남 호찌민시의 역사박물관에 들렀을 때가 떠올랐다. 그곳엔 청동 무기와 제기, 악기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베트남의 고대 문명은 확실히 청동문화의 꽃을 피운 문명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느꼈던 한 가지 – ‘이 정교함과 장엄함도, 한국 도자기의 기품 앞에선 한 걸음 물러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확신에 이번엔 주로 도자기 전시관을 주위 깊게 둘러 보았고, 나의 그 생각을 더욱 굳혀주었다.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의 혼이 만들어낸 예술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도자기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그리고 조형적 완성도가 높은 향로, 용 모양 주전자, 분청사기들이었다. 국보와 보물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나의 눈과 가슴은 자부심과 뿌듯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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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3_134204.jpg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국보 보물급 도자기들

세련된 곡선, 상감 기법으로 그려진 학, 대나무, 물고기, 연꽃,

표면에 비친 빛과 그 깊이감은 마치 수묵화 한 폭을 도자기 위에 옮겨놓은 듯했다.


특히 감탄했던 작품은 토끼 다리를 조각받침으로 삼은 연꽃 모양 향로였다. 불교적 상징과 조형미가 극치에 달해 있었고, 그 디테일은 사진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다 담기 어렵다.

20250523_133547.jpg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이 향로는 고려 후기 13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자기 표면을 뚫어내어 문양을 만드는 고난도의 투각(透刻) 장식기법을 사용하여, 연꽃 모양의 몸체 위에 향이 피어오르도록 둥근 투각 장식을 얹은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바닥의 받침대는 세 마리의 토끼 다리가 받치는 구조이다.

연꽃(蓮花)은 불교에서 정결함과 진리, 해탈을 상징하는 것이고, 토끼는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고려에서는 달 속에서 약을 찧는 토끼의 전설과 연계되어 불로장생, 도교적 맥락과도 연결된다고 한다. 또한 새해 민속에도 등장하는 다산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 구조는 불교의 정토사상, 즉 깨끗한 마음으로 향을 피워 부처에게 바치는 의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연꽃 위에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토끼들이 받쳐주는 형상은 마치 불보살이 연꽃 위에서 중생을 내려다보는 형상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부여된 의미를 생각하니, 고려인들과 장인들의 고귀하고도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듯 하다.


또 하나, 용의 형상을 한 청자 주전자는 조선 도공의 상상력과 기술력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손잡이 하나마저도 단순한 실용이 아닌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20250523_133624.jpg 청룡 귀룡모양 주자

이 주전자는 조선 전기 15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을 따르는 주전자 형태이며, 그 몸체는 마치 거북이 등껍질, 머리는 용의 얼굴, 손잡이는 구름 모양 꼬리처럼 꼬인 형태이다. 입은 벌려 있으며 물구멍 또는 장식 역할을 한다. 이 자기는 일상에서 사용하기 위한 용도라기보다 궁중 의례 또는 제사, 혹은 왕실 장식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용(龍)은 전통적으로 왕권, 수호, 길상(吉祥)을 의미하며 비, 번영,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등껍질과의 조합은 장수(長壽)와 권위를 함께 나타낸다. 도공의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며, 현실의 동물과 상상의 동물을 융합한 조형미는 당시 조선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실용보다는 의례적·상징적 역할에 더 가까워 보인다. 특히 도자기인데도 불구하고 생동감 있는 용의 표정, 턱, 눈, 비늘, 꼬리 등의 세부 조각은 마치 금속 공예나 조각 작품을 연상케 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를 넘어, 문화적 자긍심으로

동아시아 각국은 각각 특색 있는 공예 전통을 갖고 있지만, 한국 도자기는 '고요한 힘'과 '절제된 미'의 미학에서 독보적이다. 일본의 다도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중국에선 그 청아함을 찬사로 표현하기도 했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도자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이다."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시대의 미감을 담은 기록이자 정신의 그릇이었다는 것. 흙으로부터 태어나, 불 속에서 완성되고, 천 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도자기는 시간을 견디는 미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 하루, 조용히 흐르는 용지의 흐르는 물과 바람을 느끼며 힐링을 하고, 도자기들을 보면서 가슴에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득 담고 박물관 경내를 빠져 나왔다. 두 세 시간으로 이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한국에 올 때마다 거르지 않고 이곳 국립중앙 박물관을 방문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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