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의 도시가 문을 닫다

베트남 짝퉁시장에 불어닥친 단속의 칼바람

by 한정호

최근 베트남의 대표적인 짝퉁시장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다낭 시내에서 가장 유명했던 가짜 명품 거리의 상점들이 대부분 철수했고, 호찌민시의 관광 명소이자 짝퉁 쇼핑의 성지로 알려졌던 벤탄시장과 사이공 스퀘어마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겉보기에는 ‘짝퉁 단속’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미국과 베트남 간의 무역협상이라는 국제적인 정치경제 이슈가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몇 년 간 미국과의 경제 협력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특히, 2023년 9월에는 미국과 전략적 포괄적 파트너십(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을 체결하며, 양국 간의 무역, 투자, 기술,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협력 강화의 조건으로 지적 재산권 보호 강화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미국의 요구, 베트남의 선택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PR)은 미국이 무역협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 중 하나다. 특히 베트남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 IPR 미준수는 무역특혜 박탈이나 관세 인상과 같은 직간접적인 불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짝퉁 제품의 다수가 유럽 명품 브랜드를 모방한 것이더라도, 이들을 유통·판매하는 시장을 방치하는 국가는 지재권 보호의 의지가 부족한 국가로 간주된다. 이는 미국 내 기업의 저작권, 상표권, 디자인권 등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도 위배된다.

그 결과, 베트남 정부는 최근 들어 지재권 보호 강화를 위한 전방위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 단속은 단지 '한두 곳'의 적발 수준이 아닌, 전국적인 유통 구조 전반을 겨냥한 정비 작업으로 전개되며 다낭, 하노이, 호찌민 등 주요 도시의 짝퉁 판매 중심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동안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오랜 기간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여겨졌던 벤탄시장의 가짜 샤넬 가방, 루이비통 지갑, 나이키 모조 운동화 등은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되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의 셔터에는 '리노베이션 중', '임시 휴업' 등의 문구가 붙어 있지만, 현지 상인들 사이에선 이번 조치가 장기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관광객 쇼핑 수요 감소와 소상공인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이 정상적인 유통과 브랜드 가치 보호에 나서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시 열리는 문들? 단속의 지속성은 여전히 관건

하지만 최근 들어 벤탄시장과 사이공 스퀘어의 일부 매장들이 슬슬 다시 문을 열고 영업을 재개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직 단속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이 다시 매대를 펼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번 조치가 일시적인 보여주기식 단속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핵심은 베트남 정부가 이번 조치를 얼마나 일관성 있고 지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파트너들이 베트남을 지재권 보호의 신뢰 가능한 국가로 받아들이게 되면, 베트남은 더 큰 무역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짝퉁 시장의 문을 닫게 만든 것은 단순한 단속이 아닌, 국제 정치와 무역 협상의 틀 속에서 요구된 국가 신뢰도와 시스템 정비의 결과였다. ‘짝퉁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한 베트남의 새로운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명함.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시, 원래대로. 그러나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