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 낮의 길이만큼 다른 삶의 리듬
이번 한국 출장에서 문득 해가 참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 반이 넘어도 해가 지지 않고 창밖이 훤히 밝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푸미에서의 생활이 길었던 탓인지, 저녁 6시만 돼도 어스름해지는 게 익숙했는데, 붉은 노을에 감탄하며 '베트남의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며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서울의 6월 저녁은 마치 낮의 연장선 같았다.
‘왜 이리 늦게까지 해가 떠 있지?’ 그 질문이 이 글의 시작이었다.
하지와 동지를 기준으로 서울과 붕따우의 일출과 일몰 시간 그리고 낮의 길이를 비교해 보았다.
- 하지(6/21) 서울 일출시각 05:11 일몰시각 19:57 낮의 길이 : 14시간 46분
붕따우 일출시각 05:27 일몰시각 18:13 낮의 길이 : 12시간 46분
- 동지(12/21) 서울 일출시각 07:44 일몰시각 17:17 낮의 길이 : 9시간 33분
붕따우 일출시각 06:05 일몰시각 17:34 낮의 길이 : 11시간 29분
하지에는 서울이 붕따우보다 약 2시간정도 더 오래동안 낮이 길다. 하지만 동지에는 오히려 붕따우가 2시간 가까이 더 긴 낮을 가진다. 서울은 ‘낮이 길 때는 매우 길고, 짧을 땐 아주 짧은’ 극단적 구조인 것이다. 반면, 붕따우는 계절 영향이 거의 없고 1년 내내 주간 길이 12시간 내외다.
낮의 길이에 따라 생활의 리듬도 달라진다
1.계절형 루틴이 자연스러운 한국
한국에선 해가 긴 여름엔 운동, 나들이, 퇴근 후 야외활동이 활발하다. 반면 겨울엔 낮이 짧아 외출보다 실내 활동이 중심이 된다. 즉 계절에 따라 생활리듬이 확실히 바뀌는 것이다.
2. 변화가 적은 베트남
푸미나 호찌민처럼 적도에 가까운 지역은 낮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형, 저녁형 생활 리듬도 개인 차이로 결정되는 경향이 많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는’ 농업 중심 문화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3. 일몰 이후 사회 분위기
서울은 해가 늦게 지는 여름철에 야경, 산책, 마트 이용 등 활동이 왕성해 진다. 반면 붕따우는 6시 이후부터는 대부분 식사후 휴식 또는 귀가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자연의 리듬이 사람의 리듬을 만든다.
지금의 나처럼 두 세계를 오가며 산 것이 그리 오래되었는데도 이제야 이런 차이를 지식으로 두 곳의 ‘시간 감각’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 일면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낮 시간이 이렇게 달랐다는 걸 이제야 체감했다는 건, 어쩌면 그 긴 시간을 무의식 속에서 흘려보낸 건 아닐까.”
한국인이 계절을 체감하는 또 하나의 방식, ‘빛의 길이’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사계절이라는 말 속에는 단순히 기온의 변화만 담겨 있지 않다. 사람들은 체온으로 계절을 느끼기 전에, 사실상 하늘의 빛, 즉 낮의 길이를 통해 계절의 전환을 먼저 체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하루, 다른 빛의 길이
봄이 되면 눈이 저절로 일찍 떠지고, 여름에는 퇴근을 해도 아직 해가 중천에 있다. 가을이 오면 조금씩 어두워지는 저녁이 빨라지고, 겨울이 되면 아침 8시가 다 돼서야 밝아지기 시작한다.
이처럼 일조 시간의 변화는 사람의 생활 리듬과 활동 패턴을 자연스럽게 바꾼다. 온도보다 먼저 다가오는 빛의 리듬은, 우리의 일상 감각에 더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빛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행동의 변화
1.아침 기상 시간의 자연스러운 조절
해가 빨리 뜨는 여름엔 알람 없이도 일찍 일어나게 된다. 겨울에는 자연광이 늦게 들어오기에 기상도 더딘 편이다.
2.퇴근 후 여유 vs 귀가 본능
여름 저녁엔 밝기 때문에 퇴근후에 산책, 마트, 운동 등을 자연스럽게 한다. 하지만 겨울 저녁엔 어두워서 외출을 꺼리고 실내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3.계절별 운동, 여가 활동 변화
해가 길어지면 야외 러닝, 캠핑, 등산 등의 참여도가 높아진다. 짧아지면 헬스장, 독서, 실내 문화활동 중심으로 전환된다.
한국인은 ‘계절에 따라 삶의 템포를 조절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고 있는 것이다. 봄과 여름은 활동성과 외향성이 강조되고, 가을은 성찰과 여유, 겨울은 내면과 휴식이 강조되는 시기다. 이건 단순한 감성이 아니라, 빛의 변화가 만들어낸 리듬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처럼 일출과 일몰 시간이 1년 내내 큰 차이 없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감각’ 변화가 거의 없다. 아침도 여느 날 같고, 저녁도 늘 비슷하다. 그래서 ‘봄같은 날’, ‘겨울 같은 저녁’이라는 말은 사실 실감이 안 나기도 한다.
여름의 길어진 해를 느끼며 집 앞 공원에서 산책하는 저녁,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빛도 계절이다.”
변화무쌍한 한국의 사계절이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변화에 적응하는 신비로움의 덕일지도 모르겠다.
사계절은 변화가 아니라, 익숙함을 허락하지 않는 삶의 리듬이다.
'그 리듬이 한국에서 나를 움직였다면, 이곳 베트남에선 무엇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