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님의 고뇌와 백성의 희망 사이
푸미 절 앞 웃는 보살과 백제 가냘픈 사유상이 전하는 메시지
한국 출장을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그 중에서도 꼭 다시 들르는 곳이 있다. ‘사유의 방’이다. 반짝이는 금동으로 빚어진 백제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고요한 미소로 앉아서 고민에 잠겨 계신다.
왼쪽 다리를 살짝 접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그 모습은 '지혜로 중생을 구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듯 하다. 내면의 깊은 사색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홀쭉한 몸매를 보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중생 구제를 걱정을 하시나?' 싶어 거꾸로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베트남 푸미(Pu My)에서도 가끔 사찰들을 찾곤 한다. 그 중에는 웃음이 절로 나는 전각이 있다. 절 앞 작은 전각에는 배가 통통한 웃는 보살상이 놓여 있었다. 처음 보면 달마대사 같기도 한 이 좌상 앞에서 난 ‘달마대사가 보살과 동급 취급되는구나’라고 착각하면서 '배부른 금복주' 소주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웃음 가득한, 배 똥똥이 스님은 바로 미륵보살(Phật Di Lặc)이라고 한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왜 미륵보살님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같으나 엄청 다른 두 분 미륵보살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백제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가냘픈 선’으로 내면을 응시한다면, 푸미의 미륵보살상은 ‘풍만한 형상’으로 바깥으로 웃는다.
두 보살상의 차이는 겉모습만이 아니다. 백제 사유상은 6~7세기, 중국 북위·수·당 양식의 영향을 받은 금동 제작 기술로 세련된 선과 절제된 미소를 강조했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송·원 시대 ‘보리달마형 미륵보살’ 전통이 민간 절마다 전해 내려오며 중생에게 복을 나누는 풍요와 자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푸미 사찰 앞 미륵보살은 염주를 손에 쥐고, 넉넉한 배로 ‘함께 나눌 복’을 상징한다. 소박한 흙빛 재료로 빚어진 좌상이지만 그 웃음 한 번에 마음이 놓이고, ‘미래에 올 부처가 지금 이곳을 지키고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다.
그뿐만 아니다.
푸미 사찰 한편에는 삼장법사까지 함께 모셔져 있었다. 경전을 전한 스승과, 미래를 기다리는 보살을 나란히 세운 이 풍경은 베트남 불교가 대승·소승 경계를 넘어 ‘교리와 자비’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적 전통임을 보여준다.
백제 반가사유상이 “머릿속으로 중생 구제를 구상한다”고 한다면, 푸미의 미륵보살상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복을 나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하다.
두 보살상을 나란히 떠올리면, ‘미륵보살’이라는 이름 뒤에 담긴 무게가 다채롭게 느껴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한국에는 그런 백성의 현실 희망을 담은 미륵보살님은 없었을까?'
예상과 달리 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1. 안성 아양동 ‘미곡리 미륵제’의 미륵보살상
- 위치·형태 : 경기도 안성시 아양동 마을 입구 작은 전각 안
- 신앙의도 : 매년 ‘미곡리 미륵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
- 특징 : 배 부른 미소의 작은 좌상에 향을 바치고, 동네 어르신들이 제사를 주관
2.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석조미륵보살입상
- 위치·규모 : 충남 논산 관촉사 경내, 높이 18.12m의 초대형 석조 입상
- 신앙의도 : 고려 광종이 조성한 뒤 마을 수호와 나라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 미륵’으로 숭배
- 특징 : 머리에 이중 보개(寶蓋)를 쓰고, 마을 사람들이 제향을 올리며 ‘돌미륵’이라 부름
3. 해남 지역 동서남북 ‘마을 미륵불’
위치·형태 : 해남읍 신안리·황산면 연당리·송천리·성진리 등 4개 마을 바위에 음각·입상으로 조성
신앙의도: 땅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각 방향 마을 안녕과 풍어·풍년 기원
특징 : 정교하지 않은 흙빛 바위조각이지만, 주민들이 매일참배·축제를 이어옴
'아... 미륵보살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보살상이 저렇게 다르게 바뀔 수도 있구나.'
'중생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느라 고뇌에 찬 모습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풍성하고 환한 세상을 고대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담아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전달해 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이젠 다시 베트남에 있는 사찰에 들어설 때 미륵보살이 앉아 있는 전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