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다 현실, 체크카드가 일상인 베트남

현금과 계좌이체가 일상인 나라, 신용카드가 뿌리내리지 못한 베트남 사연

by 한정호

“계산은 체크카드로 할게요.”

"계좌이체할게요. QR 코드 주세요"

베트남 매장에서 대금결재 요청시, 수시로 듣게 되는 말이다. 외국 손님들이 신용카드를 꺼낼 때, 베트남 손님들은 대부분 체크카드나 QR 계좌이체를 선택한다. 그 차이가 어쩐지 묘하게 문화의 단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베트남 남부의 한 도시에 살고 있고, 작은 매장을 운영 중이다. 결제 방식은 그저 일상적인 장면일 뿐이지만, 자주 보다 보니 그 안에도 나름의 풍경과 사정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베트남 손님들의 결제 패턴은 확연하다. 10명 중 8~9명은 체크카드 또는 계좌이체를 선택하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한국 손님들은 신용카드 사용률이 훨씬 높다. 그리고 현금을 사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혹시 여기도 현금만 받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지갑을 꺼낸다. 이미 준비해 온 듯한 태도다.


왜 이렇게 다를까?


1. 빚내서 쓰기보다는, 가진 만큼 쓰는 문화

베트남 사람들은 신용을 기반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지금 내 계좌에 얼마가 있는지, 그 한도 내에서 쓰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다 보니 “신용카드 = 빚”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비의 자유를 주는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위험이기도 하다. 특히 베트남처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소득 격차, 지역 간 금융 접근성 차이가 큰 나라에서는, 신용카드는 여전히 거리감 있는 존재다.


2. 은행 문턱도 낮지 않다

베트남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일정한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세금 납부 기록, 급여 명세서가 있어야 하고, 연체 이력이 없는 ‘깨끗한’ 신용기록도 필요하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아직도 자영업자, 현금 수입자, 프리랜서가 많다. 즉, 금융기관이 요구하는 ‘공식적인 증빙서류’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신용카드는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다.

베트남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선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표적인 기준을 살펴보면,

가. 만 18세 이상 성인

나. 합법적 수입 증빙 필요 : 급여 명세서, 근로계약서, 세금 납부 증명 등

일정 금액 이상의 월 소득: 보통 500만~1000만 동 이상(약 25~50만 원 수준)을 기준으로 삼는

은행들이 많다

다. 은행 계좌 보유 + 일정 기간 이상 거래 이력

라. 국민 신용정보센터(CIC)에 연체나 미납 이력 없을 것

특히, 직장인이 아닌 경우나 소득을 공식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업종 종사자는 카드 발급이

어렵거나 한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한편, 보증금 기반 선불 신용카드(담보형 카드)는 일부

은행에서 발급 가능하다.


3. 신용카드에 대한 신뢰 부족

일부 소비자들은 신용카드의 이자, 연체료, 해킹 위험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특히 나이든 세대일수록 "카드로 빚을 진다"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4. 은행 수수료와 인프라 문제

일부 소형 매장이나 시장에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받기 위한 단말기(POS)를 갖추지 않기도 하고, 은행 수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계좌이체만 받는 경우도 흔하다. 이로 인해 신용카드보다는 모바일 뱅킹 + 체크카드 조합이 더 유용하게 여겨진다.


5. 실속파 소비자, 혜택보다 안전을 택하다

신용카드의 혜택을 즐기기보다,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선택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오히려 더 신중하고 실속 있는 소비자일지도 모른다. 지금 있는 돈 안에서 계획하고, 남기고, 필요할 때 쓰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이 이곳에서는 꽤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다.


이따금 나는 이런 풍경을 한국의 90년대와 겹쳐 보기도 한다. 신용이 곧 부의 상징이던 시대 이전의 그 단단한 소비 습관. 베트남은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 왜 여전히 체크카드를 고집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이 사회가 품고 있는 ‘경제적 자존심’과 ‘현실적 신중함’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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