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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시민은 모두 왕족 출신?

베트남 성씨 문화의 비밀

by 한정호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성씨들을 살펴보면,

1.응우옌(Nguyễn)씨 : 베트남 인구의 약 40%가 응우옌 성을 사용한다. 응우옌 왕조(1802-1945)가 국가를 통치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권력층에 충성을 나타내기 위해 성을 '응우옌'으로 바꾸었는데, 응우옌 왕조 전에도 응우옌 가문은 여러 시기 동안 베트남의 주요 정치 세력이었기 때문에, 이 성이 역사적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진다.

2.쯔엉(Trương)씨 : 구성비가 약 10%를 차지한다. 쯔엉 성은 베트남 역사에서 고위 관리나 군사 지도자들이 자주 사용한 성으로, 왕조의 지배력 확장과 함께 널리 퍼졌다.

3.쩐(Trần)씨 :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 쩐 왕조(1225-1400)는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왕조로, 쩐 왕조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을 쩐으로 바꾸었는데, 쩐 왕조의 권력과 영향력이 성씨의 확산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4.레(Lê) : 전체의 약 9-10%를 차지한다. 레 왕조(1428-1788)도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왕조이다. 레 왕조가 통치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을 레로 바꾸며, 응우옌 성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확산되었다.

이 4가지 성씨의 공통점은 왕족이거나 귀족들의 성씨라는 점이다.


유튜브 영상 [베트남 사람이야기] 베트남 사람 호칭 이야기 도 참고하세요.


한국 역사에서는 왕족의 성을 일반 백성이 사용하는 것이 불경하거나 금지된 것으로 여겨졌다. 고려 왕조의 ‘왕(王)’ 씨, 조선의 ‘이(李)’ 씨는 왕가와 그 일가를 상징했고, 평민이 이를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베트남은 정반대다.

현재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성씨는 ‘응우옌(Nguyễn)’인데, 무려 인구의 40% 가까이가 이 성을 사용하고 있으며,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성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왜 베트남에서는 왕의 성을 국민 대다수가 쓰게 된 걸까?

1. 베트남에서는 왕의 성이 곧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충성의 증표였다

베트남은 오랜 시간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권이다. 유교, 한자, 제도 모두 중국에서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특히 성씨 문화에 있어서는 왕족의 성을 독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많은 백성들은 자발적이거나 정치적 이유로 왕의 성을 따라 바꾸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응우옌’ 왕조다.

응우옌 왕조가 전국을 통일한 19세기 초, 새 정권에 충성을 보이기 위해 또는 혼란기를 피해 안정을 취하려고 혹은 과거 다른 왕조에 속했다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많은 백성들이 스스로 성을 ‘응우옌’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처럼 양반 가문에만 성씨가 허용된 것도 아니었기에, 베트남에서는 성을 바꾸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실용적인 수단이었다. 그 결과, 왕의 성을 쓰는 사람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2. 성씨는 언제부터 누구나 쓸 수 있었을까?

베트남에서도 본래는 성씨를 가진 계층은 귀족·지식인·관리 계급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의 교류가 깊어지며 한족의 성씨 관념이 점차 일반화되었다. 그러면서 왕조들은 전국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호적 제도(가구 등록)를 운용하기 위해 백성들에게도 성씨를 부여하거나 사용하도록 장려했다.

특히 쩐 왕조(Trần, 1225–1400) 이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성씨를 사용하게 되었고, 레 왕조(Lê, 1428–1788) 시절에는 성씨 문화가 거의 전국으로 퍼졌다.

즉, 베트남에서 성은 혈통보다는 행정·정치적 필요에서 비롯된 ‘이름의 구성 요소’였다. 그렇기에 왕의 성을 백성이 따라 쓰는 것에 대한 금기나 규제는 거의 없었다.


3. 왜 하필 ‘응우옌’ 성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응우옌 왕조는 베트남 최후의 왕조로, 비교적 최근까지 존속했다. 전통적으로 많은 귀족, 관리 계층이 ‘응우옌’ 가문에 속해 있었고, 후기 레 왕조와 떠이선 왕조 시기의 내전을 거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떠이선(西山) 정권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응우옌 왕조가 들어서자, 보복을 피하기 위해 성을 ‘응우옌’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이는 정치적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게다가 ‘응우옌’은 당시 베트남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던 토착 귀족 성씨였기 때문에, 다른 성보다 훨씬 더 빠르게, 널리 퍼질 수 있었다.


4. 한국과 베트남의 성씨 문화 차이, 왜 생겼을까?

한국은 오랫동안 성씨는 곧 가문이었고, 가문은 출신과 사회적 위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반면 베트남은 성보다 이름 자체에 더 비중을 두었고, 중간 이름이나 이름 끝에 담긴 의미, 혹은 ‘누구 집 자식인지’ 등의 사회적 맥락이 더 중요했다. 성은 왕의 피를 상징하는 금기어가 아니라, “정치적 소속”이나 “사회적 정체성”을 표시하는 실용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이 왕과 같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금할 것도 없었다.


왕의 성을 쓰는 국민들.

처음엔 이게 참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성이라는 건 ‘정체성’의 일부일 뿐,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삶, 가치, 그리고 행동이라는 것을 느낀다.

내가 베트남에서 만난 수많은 ‘응우옌’ 씨들 역시 모두 다른 얼굴, 다른 성격,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아마 나를 또 하나의 '한 씨'로 부르면서 내 이름보다 나의 태도와 기억을 기억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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