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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하나에 담긴 복(福)

베트남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미신 7가지 (1)

by 한정호

베트남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미신 7가지

길거리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다가, 난데없이 시선이 멈췄다.

말끔히 면도를 마친 듯 깔끔한 인상의 아저씨. 그런데 그 뺨 한쪽,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점 위에… 긴 수염 하나가 찰랑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주민 중에서도 그런 분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몰래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저건… 깜빡 잊고 못 깎은 건가?'

아니었다. 일부러 자르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모양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것이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점 위의 털, 그건 단순한 무심함이 아니었다. 지인에게 물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점이나 사마귀에서 자라는 털을 깎지 않고 두는 거야? 지저분해 보이게...”

그는 조금 놀란 듯이 말했다.

“저거, 복(福)이 깃든 털이야. 자르면 안 돼.”


처음엔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베트남에선 그런 믿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털을 ‘복털(Lông phúc)’이라 부르며, 재물운이나 장수, 행운이 깃든 표시라고 여긴다. 그래서 어떤 어르신은 그 털을 정성껏 빗고, 윤기 나도록 손질하기도 한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 그리고 베트남의 전통 민간신앙

이 문화는 단순한 민속 미신이 아니라, 베트남에 뿌리내린 유교적 가치관과 도교적 자연관, 그리고 민간신앙이 결합된 결과이다.

유교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몸과 털,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함부로 손상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베트남도 오랜 세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 정신이 꽤 깊다.

여기에 도교의 ‘기(氣)’ 개념이 더해진다. 사람의 몸엔 운명과 기운이 흐르는데, 점에서 자라는 털은 특별한 기운이 나오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털을 자르면 그 복이 ‘뚝’ 끊긴다고 믿는다.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복의 상징’

요즘 젊은 세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 혹은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에선 그 털 하나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룬다. 실제 미용실에서도 “다 깎아주세요” 하면서도 “그 점에 난 털은 건들지 마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는 손님이 종종 있다고 한다.


내게, 처음엔 의아하고, 약간 우습기도 했던 그 털 하나에서 이곳 사람들의 삶과 믿음, 그리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소중히 여기고, 작디작은 털 하나마저도 복이 머무는 공간으로 간직하는 태도.

한국에서는 '외모 관리'의 관점에서 당장 제거할 항목이었겠지만, 베트남에서는 삶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문화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낯선 문화는 거창한 전통 축제에서만 마주치는 게 아니다. 그저 길에서, 커피숍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의 뺨 위에서도 문화는 털끝처럼 살포시, 그러나 또렷하게 피어난다.


이제 그런 털을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나는 내 주변에 많은 '작은 믿음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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