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만 나오면 사람이 바뀐다

베트남 파견 근무자의 절규, 그리고 내가 겪은 현장의 기억들

by 한정호

오늘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저 진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숨이 안 쉬어져요."


술안주를 준비해 저녁 먹고 가라며 후배를 불렀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지만, 막상 들으니 가슴이 턱 막혔다. 그는 요즘 매일매일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며 겨우 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했다. 자기 생명이 위협받는 느낌이 들 정도라며, 복귀든 퇴사든 무조건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 회사의 전임자가 이미 쫓겨나다시피 한국으로 복귀 조치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출장 온 대표의 말 한마디에 사흘만에 정말 쫒겨나듯 복귀하였다. 아무 절차도, 설명도 없이.

그 대표는 한국에선 직원들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해외만 나오면, 마치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듯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법, 사회적 시선때문에 못하는 갑질을 다 해보려는 듯.


왜 그럴까. 왜 해외에만 나오면 사람이 바뀔까.

말투도, 태도도, 사고방식도.

단지 ‘거리’ 때문일까? 아니면 ‘권한’이 주는 환상 때문일까? 아니면 동남아 못 사는 나라이니 내 맘대로 해도 누가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생각 때문일까?


예전에 베트남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아침에 베트남 법인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화장실 수건이 더럽다” "어제 밤에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다"며 빨리 호텔로 와서 한국인 지배인과 상의하고 문제 해결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호치민에서는 가장 좋고 최신 호텔중의 하나인 1군의 당시 '금호금호아시아나' 호텔에 묵고 계시던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어를 못 해서 당신은 소통할 수 없으니, 내가 직접 와서 그것도 한국인 지배인과 협의하라는 지시사항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부끄러운지 모른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라운딩 플로팅 좀 구해봐" 하며 골프장 따라다니던 모습도 생생하다.

아침이면 베트남 직원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웃으면서, 회의 자리에서는 한국인 직원들만 따로 불러 “그 XX들 뭐가 문제냐”며 소리치던 모습.

그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엔 한없이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당시, 나와 함께 법인을 이끌어가던 다른 팀장들이 있었는데, 몇 명이 동시에 복귀 명령을 받았고, 그 후 홀로 남겨진 또 한 명의 친구는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후배는 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다. 그저 일터에서 쓰러졌고, 회사는 조용히 장례를 치렀고, 그렇게 사람 하나가 사라졌다.

장례식장에 온 다른 팀장의 사모님이 그 팀장과 나를 보고 "두 분이 *팀장 이렇게 만든거예요." "그 힘든 일 *팀장에게 떠 맡기고 복위해서 혼자 버티다 그렇게 된 것이니 두 사람이 이렇게 만든거예요"라며 울먹일 때 우리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요사이 부쩍 힘들어 하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휴가가 언제 라고 했지? 열흘 뒤?"

"조금만 더 버텨봐. 휴가 갈 날만 생각해. 그날까지만.”


그런 나 자신이 참 슬펐다.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는 현실이,

휴가라도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임시 방편만을 얘기해 줄 수 있는 내가 속 상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하고 아프다.

왜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해외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듯 이루어질까?

해외라는 이 공간엔, 특히 베트남 현지법인이라는 곳에선 법도, 도리도, 기본적인 존중조차 희미한 듯 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관심한 조직 안의 방치된 사람들’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책임은 늘 아래로 내려오고, 공은 위로 올라가고, 실패는 한 사람의 낙오로 정리된다.


나는 지금 그저 그 후배가 열흘 잘 몸 건사하고 무사히 한국 휴가를 다녀오길 바란다.

그 날까지, 건강 챙기기를.


마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된 날이다.

어제 어느 기업의 단체 회식 자리는 참 보기도 좋고, '아... 나도 저랬지'라며 흐믓한 기억을 떠올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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