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네 장으로 들여다 본 베트남 가정 내부
어제 유튜브에서 이쁜 한옥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관광차 한국에 오시는 관광객들에 우리 한옥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게 가이드 하면 정말 색다른 체험이겠는걸...' 그러던 중 또 한가지의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바닥이나 온돌에 자는 것이 익숙할까?'라는 것이었다.
베트남도 농경사회이고, 춥지 않은 곳이니 바닥에 자는 것에 문제는 없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근대이후 프랑스 식민생활로 침대문화에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겹쳐져 베트남 사람들의 잠자리 풍경에 대해 살펴 보았다.
1. 전통 가정의 침실, 특히 북부나 중부 산악 지역 중심의 모습
전형적인 목조 구조로, 벽과 바닥, 창틀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서 베트남 전통 목조건물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무는 통풍성과 습도 조절에 유리해서, 열대 기후에 잘 맞는다. 바닥형 침구를 사용하는데, 침대 없이 바닥에 매트리스(혹은 접이식 폼)와 이불을 깔아 놓은 형태이다.
이는 밤에는 이불을 펴고 자고, 낮에는 접어서 한쪽에 정리하기 쉬운 구조이다.
특히 대형 모기장 (Màn ngủ)은 천장에 걸린 형태로, 베트남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시골이나 통풍 좋은 창문 많은 집은 여전히 모기장을 필수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한 방에 여러 개의 이불을 깔고 온 가족이 함께 자는 가족 공동 침실 방식이 전통적이었고, 지금도 외곽 농촌에서는 부모, 자녀가 함께 자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형태는 북부 산간 마을 (예:사파, 박하, 옌바이 등)이나, 전통 민족 마을 홈스테이, 혹은 중부 퀘손/투이호아 같은 농촌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도시에서도 나이 든 어르신이나 전통 지향적인 가정은 이런 구조 유지 중이다.
베트남의 전통적인 숙면 방식은 바닥에서 시작된다. 나무 바닥 위에 펼쳐진 얇은 매트리스, 그리고 그 위를 감싸는 모기장으로 마무리된다. 이 방식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베트남 기후에 딱 맞는 자연적인 형태다. 특히 푸미, 푸꾸옥, 닌빈, 하장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이런 형태가 여전히 일상이다.
시원한 나무 바닥, 환기 잘 되는 방, 그리고 밤이면 짙게 내려앉는 곤충 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베트남의 전통적인 ‘숙면의 풍경’을 이룬다.
2. 전통 가정의 나무 침대 – “타일과 나무의 조화”
‘나무는 곧 건강이다’
침대의 원목은 대부분 티크(Tếch), 송나무(Gỗ thông), 자작나무(Gỗ sồi) 등의 내습성 강한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구조는 간단하지만 단단하고, 장식 없는 직선형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나무는 건강에 좋다'는 생각과 '나무가 습기를 잡아 먹는다'는 인식이 있어, 베트남 사람들은 금속보다 나무를 선호하는 전통이 있다.
타일 바닥과의 조화 : 실용성과 위생
침대 아래 바닥은 광택 타일(gạch men)이 깔려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베트남은 덥고 습해서 청소가 편하고 시원한 타일 바닥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타일 바닥 위에 침대를 올려두면 통풍이 잘 되고 곰팡이 방지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 침대 위에 두께 얇고 단단한 폼 매트리스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매트리스는 무릎 꿇고 앉았을 때에도 푹 꺼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 매트리스와 이불은 침실의 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색이 강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불, 베개 커버는 지역에 따라 문양이나 색이 다르지만, 꽃무늬, 새, 호랑이 등의 강한 컬러와 전통무늬를 선호하는 공통점이 있다.
잠자리의 완성은 모기장(Màn ngủ)
천장에는 얇고 부드러운 모기장이 걸려 있는데, 모기와 벌레 방지 외에도, 심리적 안정을 주는 역할도 한다. 특히 농촌에서는 지금도 모기장 없으면 잠 못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특히 아이 있는 집에서는 아예 4면을 천으로 막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개인보다 가족 중심의 침실 문화
1인 1침대보다는, 부부+자녀가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았고, 자녀가 커지면 인접 방에 작은 단층 침대 하나 더 놓는 식으로 공간을 분리해 나간다. 낮에는 침구를 걷어서 정리하고, 공간을 다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3. 고급 주택의 캐노피 침대 – “식민지 유산이 남긴 생활의 격식과 흔적”
캐노피 침대(Canopy bed)란?
네 개의 기둥이 침대 모서리에 서 있고, 그 위에 천이나 커튼을 두른 구조의 침대를 말한다. 원래는 서양 귀족의 방한 및 방충용 가구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 상류 계층과 공직자들 사이에서 도입되었다.
베트남식 캐노피는 특히 중부 후에(Huế), 하노이 구시가지, 달랏(Da Lat) 같은 지역 고급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침대는 식민지 시대의 흔적으로, 프랑스는 19세기 후반~20세기 중반까지 인도차이나(Indochine) 지역을 지배했다. 이 시기 프랑스 건축 양식 + 베트남 전통 목공 기술이 결합되면서, 이런 침대가 자연스럽게 탄생되었다. 즉 이 침대 스타일은 단순히 수입된 가구가 아니라, 베트남 장인들에 의해 현지 기후와 미감에 맞게 재해석된 스타일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침대의 프레임 재질은 고급 목재 (홍목, 대추나무 등)를 사용하고, 프랑스풍으로 가공되기도 하엿다. 기둥에는 나무 문양 또는 프렌치 아치 형태의 문양을 조각한다. 커튼 또는 캐노피 천모기장 겸용으로 리넨・실크 소재도 사용한다. 침구에는 꽃무늬, 브로케이드 문양 등을 새기기도 하고, 왕골 매트리스 또는 솜을 두툼하게 넣은 스타일을 선호한다. 이 침대는 보통 침실 내 독립된 공간 또는 대형 창가 옆에 놓고 사용하였다.
이 침대는 일반 대중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위와 여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지주 계층, 관료 가족, 도시 유산층이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들에게 침실은 단순히 ‘자는 곳’이 아니라, 응접, 휴식, 독서 등의 공간으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캐노피 침대가 있는 집은 곧 '문화적 교양'을 갖춘 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 침대와 침실은 일부 고급 전통주택, 홈스테이, 문화 보존 주택, 리조트에서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후에 왕조 지역 고택에서는 복원된 캐노피 침실을 관광객용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요즘도 상류층이나 예술가 집안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채택하는 경우 있다.
한층 더 올라가면 고급 주택이나 리조트에서 보게 되는 베트남 특유의 ‘식민지풍’ 침실이 있다. 네 기둥이 솟은 캐노피 침대, 패턴이 화려한 커튼과 침구, 그리고 장식된 목재 가구들이 그것이다. 이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도입된 생활양식의 흔적으로, 후에, 달랏, 하노이 구시가지의 고급 저택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결국 이런 공간은 ‘잠을 자는 곳’이라기보다, 일종의 문화적 전시장이자 라이프스타일의 표현인 것이다.
4. 도시 중산층의 하이브리드 인테리어 - “전통과 모던의 공존”
현재 호찌민, 하노이, 다낭, 껀터 같은 대도시에서, 도시 중산층의 거주 형태는 대부분 아파트 또는 3~4층 단독주택(튜브하우스)이다. 한편 최근엔 빈홈(Vinhomes), 마스터리(Masteri), 선아반(Sun Avenue) 같은 대형 개발사의 중상급 아파트에 입주하는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 침실의 스타일을 살펴보면, 벽, 천장은 깔끔한 흰색이나 베이지 벽지를 바르고 간접등 또는 LED 매입 조명 사용한다. 바닥은 밝은색 타일 또는 원목 무늬 시트를 사용하는데 청소가 용이한 재질 선호하는 것이다. 가구의 경우 IKEA식 미니멀 가구에 전통 목재 가구를 혼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즉 모던한 침대 구조에 나무 캐비닛, 장식대 등을 조합하는 것이다.
전통 요소와의 융합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거실 한켠에 가정용 불단(Bàn thờ)을 놓고, 향과 조상을 위한 사진을 진열해 두고 있는데 이것은 고급 아파트에서도 불단 공간은 반드시 확보하고 있다.
또한 전통 장식의 붉은 복(福)자 액자, 노란 등롱, 대나무 바구니, 아기자기한 도자기 등이 인테리어 소품을 추가하여 실용과 스타일을 함께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특히 1985년생 이후)는 모던 인테리어 감각을 중시하면서도, 부모 세대의 문화적 유산은 정서적으로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네 장의 사진은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듯 하다.
자연에 가까운 바닥 생활부터, 과거의 식민 유산, 그리고 현대 도시인의 모던 라이프스타일까지. 베트남의 '잠자리'는 단순한 수면 공간이 아닌, 시대와 지역, 계층이 반영된 하나의 문화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한옥의 바닥이나 구들장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은 작은 기우일뿐이고, 덕분에 베트남의 침실에 대해 살펴본 기회가 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