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BS에서 함께 했던 세 명의 매니저 이야기
"그때 그 아이들, 여전히 그립다"
베트남에 다시 들어와 개인 법인 FORBS를 만들고, 처음으로 공감 매장이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과 라면 전문점을 열었을 때, 처음부터 함께해 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Trang.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얼굴의 소녀였다.
어느덧 6년이 흘렀다. 그 사이 공감은 4개의 매장으로 확장되었고, Trang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늘 묵묵하게, 때로는 웃으면서, 가끔은 억지로라도 버텨가며.
오늘은 Trang이 마지막 근무를 한 날이다.
어머님이 멀리서 출퇴근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그만 두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지만, 자신이 감당하겠다며 자리를 지키던 아이였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회식 후 귀가길, 오토바이 사고로 몇 달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고, 그 때도 물론 어머님은 더더욱 출퇴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회복한 후 다시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이번엔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며,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겠다고 말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결정.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아니,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문득 함께 했던 매니저들 생각이 났다.
Vuong, Tien, 그리고 오늘 떠난 Trang.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부모님의 호출로 떠났다는 점.
Vuong은 코로나 시절, 경찰의 단속을 피해가며 매장에 출근했던 친구다. Vuong은 어느 날 "아버지가 시골에 가게를 냈는데 아들이 와서 일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라며 아쉬워 하며 떠났다. 그래도 고향에서 가게 사장이 되는 것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니 마음 기쁘게 떠나 보났다.
Tien은 공감 Extra 매장을 맡아 일하던 친구인데, 하루는 "여긴 제 매장이니까 Mr.Han은 간섭하지 마세요" 라며 웃으면서도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챙겨 나갔다.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몇 달간만 시골 일 좀 도와줘라"는 말에 손을 끌려 떠났다. "아빠가 몇 달이라고는 하시지만 돌아 올 수 있을 지 몰라요"라며 눈물을 보이던 앳띤 소녀 매니져였다. 시골에서 타작을 하는 영상, 자기 사진을 가끔 보내며 안부인사를 하던 친구이다.
그런데 아마도 시집을 간 듯하다. 언제부턴가 내 안부 인사에도 대답이 없다. 생각하면 조금 가슴 시린 보고픈 소녀이다.
그리고 오늘, Trang. 정들고 아쉬운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돌아간다.
그 친구들은 내게, 딸 같고 아들 같은 존재였다.
서울에 있는 내 자식들과 나이대가 비슷한 아이들. 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구보다 책임감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저녁, 그 아이들이 유난히 보고 싶다.
이제 나는 혼자 남은 듯 하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그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리고 그들과 보낸 시간이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남기고 싶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의 인생 어디선가
내 이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그저 바란다.
몸 건강히, 열심히 살아서, 크게 성공하길.
그것이면 충분하다.
“Trang, Vuong, Tien... 고맙고, 또 고맙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여기 있다는 것, 기억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