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종교를 넘어선 정치 네트워크의 배경

정치와 종교가 결탁함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경계해야 할 때

by 한정호

1954년, 서울에서 한 종교단체가 창립됐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훗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로 불리게 되는 이 단체다.

통일교는 1954년 한국에서 문선명이 창립한 기독교 계열 신흥종교다. 스스로를 ‘기독교의 완성’을 표방하지만, 주류 개신교에서는 정통 교리와 다른 점 때문에 이단으로 분류한다. 통일교의 경전 격인 『원리강론』은 성경을 재해석해 인류 역사와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며, 특히 문선명을 ‘참부모’로 칭해 인류의 구원 사명을 완성할 존재로 본다. 여기에 독특한 합동결혼식과 혈통 정화 사상이 결합돼 교단의 상징적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 편, '반공'은 통일교에서 단순한 정치 입장을 넘어 ‘신앙 실천’의 한 축으로 간주된다. 『원리강론』에서 공산주의는 무신론·유물론에 기초한 ‘사탄의 사상’으로 규정되며, 이를 이기기 위한 사상·문화·정치 투쟁이 곧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길로 제시된다. 이런 인식 때문에 통일교는 세계반공연맹(WACL)이나 국제승공연합 같은 정치·사회 조직을 직접 운영했고, 신도들에게 반공 교육과 활동 참여를 종교적 의무로 부여했다. 신앙과 정치 이념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가 바로 통일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1. 통일교의 성장 배경

창립자인 문선명은 종교 교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반공(反共) 이념을 강하게 내세웠다. 이것이 통일교 성장 배경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 냉전 시대의 반공 연대

1950~80년대는 냉전의 한가운데였다. 한반도는 분단 상태였고, 동아시아는 베트남전·중소 분열 등 격랑 속에 있었다. 통일교는 종교 활동과 더불어 국제 반공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세계반공연맹(WACL)’, ‘국제승공연합’ 같은 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한·미·일 보수 진영과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나. 국제 정치와 종교의 결합

통일교는 종교라는 틀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규모 합동결혼식, 해외 선교, 언론사 설립(세계일보, Washington Times) 등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넓혔다. 막대한 헌금과 사업 수익을 기반으로 정치 행사·사회 캠페인을 후원하며, 종교 외피 속에서 정치적 존재감을 강화했다.


2. 왜 정치권이 연계했나

가. 한국 정치권의 이유

- 반공 이념 공유 :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 반공은 국가 기조였다. 통일교의 반공 메시지는 정치권 입장에서 ‘이념적 동지’로 받아들여졌다.

- 국제 네트워크 활용 : 통일교는 미국·일본 보수층과 연결돼 있었고, 이를 통해 외교·경제 지원 창구로도 기능할 수 있었다.

- 동원력 : 신도들의 조직력과 자원봉사, 행사 인원 동원 능력은 선거와 대규모 캠페인에 매력적인 자산이었다.


나. 일본 정치권의 이유

- 반공, 보수 연대 : 냉전 하에서 일본 자민당은 미·한과 함께 반공 노선을 유지. 통일교의 국제 반공 네트워크가 자민당 외교·안보 노선과 맞아떨어졌다.

- 재정·인력 지원 : 일본 내 신도 수와 헌금액은 세계 최대 규모. 이를 통한 자금력과 조직 지원이 가능했다.

- 사회적 이미지 활용 : ‘세계평화’, ‘가정 가치’ 등 긍정적인 표어를 내세운 통일교 행사에 참여해, 정치인들이 보수·전통 가치 수호 이미지를 강화했다.


3. 한·일 정치권 행보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 공통점

- 반공 이념을 매개로 한 연대 : 양국 모두 냉전 시기 반공을 핵심 가치로 두었고, 통일교는 이를 국제적으로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 행사 참여를 통한 우호 이미지 구축 : 정치인들이 통일교 주최 행사에 얼굴을 비치며 상징적 지지를 표현.

- 조직 동원력 활용 : 선거, 집회, 캠페인 등에서 신도 동원 능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본다.

나. 차이점

한국 : 통일교와 정치권의 관계는 주로 군사정권 시절 ‘이념·외교 채널’ 역할에 집중하였으며, 재정적 의존도는 낮았다. 통일교는 주로 외교와 홍보 창구로 활용되었다.

일본 : 통일교가 직접적 재정 기반이 될 정도로 헌금액이 컸고, 정치인들이 행사 참여·유착을 통해 금전적, 조직적 이익을 얻는 구조가 뚜렷하다.


사회 반응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에서는 통일교가 주로 종교적 특이성(합동결혼식 등)으로 주목받았다면, 일본에서는 2022년 아베 사건 이후 ‘헌금 피해’와 ‘정치권 유착’이 사회적 분노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11일 오후 01_27_32.png 통일교 합동 결혼식 이미지

통일교는 종교 활동을 넘어서, 한·일 정치권을 연결하는 이념·자금·인력 네트워크로 기능해왔다. 공통적으로 반공 이념이라는 시대적 토대 위에 서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재정 기반, 한국에서는 외교·이념 채널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 차이가 이후 두 나라에서 통일교가 받아든 사회적 평판과 정치적 파급력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현재 윤석열 대선 개입 논란을 계기로 통일교과 정치와 결탁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잇다. 즉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이 종교와 결탁하고 그 힘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일본 자민당 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윤석열 대선 개입 및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보면서, 정치와 종교가 손을 맞잡을 때 어떤 부작용이 드러나는지 우리는 생생히 보고 있다. 종교가 신앙의 영역을 넘어 정치 권력의 장으로 들어서면, 그 순간부터 종교는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정치권은 국민 전체가 아닌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종교와 정치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위에서 권력과 신앙이 서로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감시와 견제가 강화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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