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국민 여동생, 정훈희

노래 한 곡 부르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요구한 위문공연을 수락한 여가수

by 한정호

1960~70년대 한국 대중가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가수 정훈희.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무대에 서는 순간, 장병들의 가슴을 울렸던 그녀는 ‘국민 여동생’, ‘최고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당대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열일곱 소녀, 그리고 목숨을 담보한 각서를 수락한 베트남 전장터에서의 위문공연.

정훈희가 처음 베트남 위문공연을 떠났을 때 나이는 고작 17세였다. 당시 전쟁터에 들어가는 이들에게는 군인뿐 아니라 예술인조차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공연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더라도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라는 내용에 동의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열일곱 소녀가 이 유서와도 같은 각서에 서명한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로선 감히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노래하기 위해,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 어린 나이의 그녀는 죽음을 옆에 두고도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위문공연은 주로 후방 기지나 안전지대에서 진행됐지만, 후방조차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기습 공격과 게릴라전을 자주 했기 때문에, 공연이 열리던 부대 인근도 박격포 공격이나 야간 기습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공연이 열리면 주변에 군사 경계가 대폭 강화됐고, 관객석 뒤편에 무장 병력이 배치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군을 대상으로 공연하던 해외 가수들은 공연 도중 공격을 받은 사례가 기록에 남아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미군을 위문하러 온 밥 호프(Bob Hope) 공연단은 사이공과 다낭 등지에서 공연 직후 부대가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무대 자체가 직접 피격된 경우는 드물지만, 공연 직후 로켓 공격 같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국 연예인들의 경우, 정훈희, 패티김, 이미자, 배호 같은 당대 가수들이 위문공연을 갔었는데, 이 때도 모두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언론과 회고록에는 “공연 도중 언제 공격이 올지 몰라 항상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증언들도 많다. 그래서 규정상 유서를 쓰고 출발했고, 공연 중에도 장병들이 총기를 옆에 두고 지켜보는 모습이 흔했다고 한다.


전장의 위문공연, 그리고 ‘안개’

베트남 전쟁은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먼 이국땅에서 전투에 임했던 시대였다. 그들에게 가장 큰 위안은 잠시나마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위문공연이었다.


정훈희 소녀는 이곳에서 자신의 대표곡 ‘안개’를 불렀다. 짙은 안개처럼 흐릿했던 전장의 시간 속에서, 그녀의 노래는 장병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스며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어느 한 장병은 "여동생 같다"며 가지 말라고 하면서 한참을 손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공연을 직접 보신 참전용사들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실 것이다.


꽃밭에서, 고향을 그리다

또 다른 무대에서는 ‘꽃밭에서’가 울려 퍼졌다. 총성이 멈춘 짧은 틈새, 꽃 향기 가득한 고향 들판을 떠올리게 한 그 노래는 전우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가요 한 곡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전쟁 속 청춘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쉽게도 공연 장소의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호치민 인근 부대였는지, 중부 전선 캠프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정훈희의 위문공연이 세 차례나 진행되었고, 그때마다 군인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고향을 대신해 찾아온 “국민 여동생” 그 자체였다.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지만, 그 와중에도 노래는 사람들을 살렸다.

정훈희의 목소리는 죽음까지 각오하며 노래했던 그 시간.

그것은 단순한 위문공연이 아니라, 한 세대의 아픔과 희망을 함께 노래한 역사인 것이다.


오늘은 당시 그 소녀의 음성으로, 그 분의 노래들을 들어보려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 여동생, 정훈희 : 목숨을 담보로 한, 월남 위문공연


안개, 꽃밭에서, 강 건너 들불, 꽃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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