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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추석에 안 쉬나요?

한국의 추석이 유독 ‘3일’로 특별해진 이유

by 한정호

가족,친지들과도 함께 하지 못해 속상한 추석, 쉬지도 못하니 왕짜증난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의 카톡, 통화를 하다보면 '베트남은 추석에 안 쉬나요?' '추석에 한국에 안 들어 오세요?'라는 질문을 듣곤 한다. "정상 근무 입니다"라는 답변만으로는 억울한 베트남의 추석이다.

중국, 한국, 베트남 모두 유교권 국가로 제사, 생활품습 등 같은 점이 많아 설날은 모두 며칠씩 같이 쉬면서 추석만은 유독 한국만 3일을 쉴까? 살펴보았다.


1. '한가위는 큰 날' - 전통의 뿌리

추석(한가위)은 조선시대에 이미 설·단오와 함께 3대 세시 명절로 굳어졌다. 수확을 마무리하며 조상께 감사 올리고(차례·성묘), 마을 공동체가 놀이와 음식을 나누는 ‘결산의 의례’였다. 한국의 추석이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가족, 조상, 공동체를 묶는 큰 의식으로 자리 잡은 건 이때부터다.


2. 법정 공휴일로 고착 - 현대의 제도화

해방 이후 정부는 공휴일 체계를 정비했고, 추석은 법정 공휴일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지금처럼 길지는 않았다.

- 1985년까지 : 추석 당일, 1일만 쉼.

- 1986 ~ 1988년 : 당일+다음 날, 2일 연휴.

- 1989년부터 : 전날+당일+다음 날, 3일 연휴로 공식화. 당시 정부가 “민족 고유 명절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설·추석을 3일 연휴로 결정하면서 지금의 틀이 만들어졌다.

- 여기에 대체공휴일 제도가 더해지면서 길이가 더 늘어나는 해가 생겼다. 제도는 2013년 도입, 2014년 처음 적용되었고(설, 추석, 어린이날), 2021년 법 제정·개정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일부 국경일까지). 그래서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치면 평일 하루를 더 쉬게 된다.


3. 왜 한국만 ‘3일’이 일상이 되었나?

핵심은 의례 + 이동 + 산업화의 결합이다.

가. 의례의 시간성

한국의 차례, 성묘는 준비-집행-정리의 단계가 뚜렷하다. 전날엔 제수 및 이동 준비, 당일엔 의례, 다음 날엔 복귀. 의례에 시간·노력이 많이 드니 하루로는 부족하다.

나. 귀성 대이동

수도권 집중과 핵가족화 이후, 명절마다 수천만 명이 고향으로 이동한다. 교통 혼잡·피로 누적을 고려하면 사회적으로도 최소 3일이 필요해졌다.

다. 정책적 선택

중국은 2008년 공휴일 개편 때 중추절 1일만 법정휴일로 두었고, 베트남은 법정휴일이 아님(밤축제, 가족행사 중심). 한국은 1989년에 설·추석을 아예 3일 연휴로 ‘정책 결정’을 했다는 점이 다르다.


4. ‘가족의 명절’이 ‘전 국민 프로젝트’가 되기까지

추석은 원래 농경 공동체의 감사제였지만, 산업화 이후엔 도시-시골을 잇는 전국적 이동이 더해져 사회 전체가 함께 조정해야 하는 이벤트가 됐다. 1989년의 3일 연휴 조치는 이런 현실(이동, 의례)과 전통(가족, 조상)을 맞추기 위한 제도적 타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대체공휴일은 ‘빼앗긴 빨간 날’을 보전해 명절의 실효 휴식을 보장하는 안전판이 됐다.


5. 한눈에 보는 대한민국 추석 연표

- 조선시대 : 추석, 설, 단오와 함께 3대 세시 명절로 정착.

- 1985년까지 : 추석 당일 1일 휴일.

- 1986~1988년 : 추석 2일 연휴.

- 1989년 : 정부 결정으로 3일 연휴 공식화(설 포함).

- 2013~2014년: 대체공휴일 제도 도입 및 첫 적용(설, 추석, 어린이날).

- 2021년 : 공휴일법 제정·개정으로 대체공휴일 적용 확대(일부 국경일 포함).


6. '명절을 지킨다'는 사회적 합의

한국의 추석이 특별한 건 전통의 무게(가족, 조상 의례)와 현대의 필요(귀성 및 복귀의 시간)를 국가 제도가 꾸준히 뒷받침해 왔기 때문이다. 사흘 연휴는 ‘쉬고 먹자’가 아니라, ‘돌아가 예를 다하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보장하는 사회적,제도적 약속이다.

그리고 나는 베트남에서 오늘도 “정상 근무입니다”를 말한다. 낮에는 일상처럼 일하고, 밤이 되면 동네의 등불과 사자춤 소리에 잠깐 마음을 얹는다.


올해 한가위, 고국의 모든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 풍성하고 따뜻한 시간이 가득하시길. 여기 베트남의 약간은 아쉬운 추석도, 그 마음 덕분에 조금은 덜 쓸쓸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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