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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25. 2020

88. 단 10분간, 마지막으로 빵과 와인을 나누다

논문학기 도중에 A와 함께 한 밀라노 여행(2)

17.06.30 금요일


사실 밀라노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그새 뤼벤대에서의 2학기가 끝이 났다는 데 있었다. 여름 내내 논문을 마무리하고 재시험 준비도 해야 했지만 A도 나도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다가 종강의 그 후련한 기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준 걸까, 어제의 흐리멍덩한 하늘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하루, 밀라노에서의 또 다른 하루를 맞았다.


오늘은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지만 약간의 개인플레이가 계획되어 있었다. 애초에 A와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여행 일정이 달라서 맘 편히 오전은 각자의 자유시간을 가지고, 오후에는 점심식사를 시작으로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 함께 밀라노를 걸어 보자는 데 동의를 한 참이었다. 평소 요리를 즐기는 A는 어제 방문했던 식료품점인 EATALY에 다시 가서 뤼벤으로 가져갈 식재료들을 살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나는 밀라노에 오면 꼭 보고 싶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 이른 아침부터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서는 성당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성당은 예약제로만 입장이 가능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에만(10-15분) <최후의 만찬> 관람을 허용한다. 때문에 예약 시간에 미리 성당 앞에 도착해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입장권을 받고서 재빠르게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예약 시기를 조금 놓친 나는(애초에 이 여행이 즉흥적으로 계획되기도 했으니 예약 시기를 제때 맞출 수 있었을 리가!) 5유로 정도 웃돈을 더 주고 한 여행 프로그램 예매 사이트에서 성당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는데, 하필 건진 표가 아침 아홉 시 표였던 것이다. 때문에 이른 시간부터 성당으로 빨리 걷지 않으면 안 되었고,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A가 여전히 한밤중일 때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성당 앞에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한 나는 사진을 찍으며 여행사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인인 건 또 어떻게 알아보고서  성당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처음엔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잡상인이길래 적당한 미소와 함께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그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드디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 <최후의 만찬> 앞에 선 순간,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벽화(그렇다, 우선 이 <최후의 만찬>은 그림이 아니라 벽화다)의 스케일에 깜짝 놀랐고, 성당 내부의 아침 햇살과 <최후의 만찬>이 일종의 '관계를 맺어가며' 조성하는 분위기와 빚어내는 공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걸 안 보고 갔더라면 밀라노를 다녀갔어도 다녀간 게 아닌 게 되었을 거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예매하고, 이른 아침부터 숙소를 빠져나와 성당으로 걸어온 나 자신에게 참 고마웠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마태복음 26장 26절에서 29절까지 말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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