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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26. 2020

89. 식전 빵 연기대상을 발표합니다

논문학기 도중에 A와 함께 한 밀라노 여행(3)

17.06.30 금요일(계속)


밀라노 성당의 석자재를 운반해 들어왔다는 나빌레오 운하의 풍경.
밀라노 성당 앞의 풍경(이곳은 지붕 위에 올라가 투어를 해봐야 한다는데 그걸 이땐 몰랐다!)



<최후의 만찬>을 감상한 후 A와 조우한 나는 밀라노의 나빌리오 운하로 향했다. 밀라노 대성당의 석재들이 이 운하를 통해 들어왔다는데, 그런 운하들도 이전에는 많던 것이 이제는 밀라노에 몇 안 남게 되었다고 한다. 운하 주변으로는 소박한 풍경들이 자리해 있다. 운하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본 후, 우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리 검색해 둔 로컬 식당을 찾았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해물 파스타가 흡사 계란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건데, 계란이 아닌 토르티야 빵 같은 것이 (오븐에 들어가도 끄떡없는) 파스타 그릇을 감싸고 있었다. 파스타를 먹으려면 그 토르티야 같은 것을 식기로 '열어젖혀야(?)' 했는데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의 해물찜을 먹는 느낌이 들었달까. 파스타에는 새우가 아닌 쏙이 참 많이 들어가 있었는데, 쪽쪽 빨아먹다 보니 짭조름한 양념이 입 안으로 왈칵 들어오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해산물 인심이 아주 좋았던 나빌레오 운하 근처에서의 한 끼



사실 식당과 관련해서는 주문한 파스타를 먹은 후의 일화가 더 기억에 남긴 하다. 배불리 식사를 마친 A와 나는 계산서를 요청하고서 요금 내역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각자 주문한 음식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청구 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이게 뭔가, 하고  주인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식전 빵!" 하시는 거다. 


주인아저씨는 두 종류의 식전 빵을 서빙해 주셨다. 하나는 나무 바구니에 담긴 제법 큰 덩어리의 빵들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올리브 오일을 바르고 구운 듯한 납작한 빵들(사실 빵보다는 과자라고 해야 할까?)이었다. 아저씨께선 이런 빵을 제공하는 일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식전 빵 두 그릇을 툭 두고 가셨고,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인심 좋은 가게네'하고서 두 가지의 빵을 맛있게 먹었더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빵인지 과자인지 헷갈리는 그 납작한 것이 유료 서비스였던 거다. '여기 놔두는 건 내 자유고, 이걸 먹는 것 또한 너희들의 자유야. 하지만 먹는다면 대가를 치러줘야겠어.' 뭐 이런 마케팅 전략이라고나 할까. 식전 빵을 서빙할 때의 주인아저씨 표정이 생각나면서 '연기 대상감이군'이란 생각과 함께 절로 웃음이 났다. 다행히도 청구된 금액이 비싸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A와 내가 정말 맛있게 먹었기에, 기분 좋게 식전 빵까지 지불하고선 식당을 나왔다. 


문제의 유료 서비스 식전 빵은 사진의 오른편에 보이는 저 납작한 빵(혹은 과자)이다





식당에서 나오자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느 밀라노 가정집 지붕은 우리나라의 기와집을 떠올리게도 할 정도로 묘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A와 나는 천천히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쪽으로 걸어가 보자면서 산책을 시작했다. 밀라노를 뜨는 건 오늘 저녁이었지만 이런 햇살 아래, 느긋함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면 요리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파스타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스파게티 면보다는 조금 더 널찍한 링귀니 면을 좋아하고, 유럽 유학 시절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면 뇨끼를 사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먹은 적도 있다(꽤 떡볶이스러웠다). 크리미 한 소스보다는 담백한 오일 소스가 좋다. 가끔 취향을 고려하여 레몬 오일이나 트러플 오일로 파스타 요리에 재미를 더해보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실패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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