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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Dec 03. 2020

96. 런던은 함께 걸어야  더 멋지답니다

"Work+ Vacation = Work-ation" 런던 여행 (4)

17.07.10 월요일 - 17.07.11 화요일


이틀간 친구들과 함께 런던을 누비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사랑하는 도시에서 친구들과 걷고 이야기하고 먹으니 이전보다 런던이 더 좋아졌다.


Oh My Taylor!


나의 대학원 친구 Taylor는 런던에서 대학 공부를 했었다. 때문에 런던은 그녀에게 일종의 앞마당, 동네와도 같은 도시인데 그런 Taylor의 런던 방문이 나의 런던 여행과 겹쳐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사실 우리들의 목적지는 런던 힙스터들이 몰려 든다는 캠든 마켓(Camden Market)이었으나 전날 밤에 캠든 시장에 화재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한 후, 우리는 재빨리 하이 스트리트 켄징턴(High Street Kensington)으로 약속 장소를 바꾸었다. 하이드 파크와 이어지는 켄징턴 파크 주변에 홀 푸드 마켓에서 고기 파이와 어니언 치즈파이, 샐러드 한 상자를 구매하고선 캔징턴 궁전을 바라보며 잔디밭에 앉아 한바탕 피크닉을 벌였다.


캔징턴 궁 주변에는 꽤나 오리엔탈적인 외관을 하고 있는 로열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 옆으로 재미난 풍경들이 펼쳐졌다. 눈에 띄게 맑디 맑은 호수와 거대한 백조와 오리들. 물가에 무료인 것처럼 펼쳐 두었지만 사실상 유료 서비스였던 비치 의자들. 길게 늘어뜨린 나무 그늘과 푸르른 여름 풍경. 조금만 걸어 나가도 백화점과 관광객들이 득실대는 런던 도심이었는데, 공원 안은 어찌나 이렇게 평안한 걸까.




Taylor와 나는 그 짤막한 피크닉 이후에 걷고 또 걸으며 여행을 계속하였는데(이상하게도 걷는 동네마다 꽤나 부티 나는 동네였다, 이름하여 '런던 부촌 투어'),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미리 점찍어 두었던 Sandoe Books라는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을 사랑하는 런던의 로컬적 분위기에 흠뻑 취했다. 독일어 팸 친구 S가 추천해준 에프터눈 티 카페 Candella도 찾아가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얹으 스콘에 홍차 한 잔을 기울이며 한낮의 여유 또한 확실히 챙겼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또 걸으며 이야기를 했는데, 걷다 보니 방향이 노팅힐로 향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웬 공원을 마주쳤는데 그곳의 이름은 무려 홀랜드 파크(Holland Park), '런던에 웬 네덜란드지?' 하면서 궁금증이 인 우리는 홀랜드 파크를 잠깐 탐색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름은 홀랜드면서 또 막상 공원 내부의 하이라이트는 일본식 정원과 방생되어 있는 공작새가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홀랜드는 사람 이름이었고 네덜란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걷다 걷다 도착한 곳은 노팅힐 서점(Notthing Hill Bookshop)이었다. 서점을 기웃거리는 휴 그렌트와 줄리아 로버츠는 없었지만 긴 산책과 노팅힐 서점 구경 이후에는 Nandos에서의 치킨 파티가 있었다.


반나절을 함께 하자고 만났으나 거의 하루를 함께 보낸 Taylor. 내일이라도 대학교 캠퍼스 140동 어딘가에서 곧 다시 볼 것만 같은데 잠깐 다시 안녕을 고해야 하다니 아쉽고 아쉬웠다. 이번 연도에 LSAT을 준비 중이라고 얘기하던 Taylor의 여름, 가을, 겨울에 응원의 기운을 잔뜩 흘려보낸다.






곰, 곰, 곰, 곰다가 왔어요!



다음날 런던을 함께 즐긴 친구는 나의 오랜 베스트 프렌드 곰다였다. 이 친구를 곰다로 부르게 된 건 다 그 친구가 자처한 일이다(곰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곰다(곰+자신의 이름 일부)'라고 소개하던 게 벌써 13년 전이다).


곰다를 런던에서 만나기로 한 날 오전, 나는 Airbnb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서 빅토리아 역 주변의 한인민박 집으로 체크인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날아오시는 부모님과 함께 쓸 숙소로는 아무래도 변두리의 Airbnb 보다는 중심가의 한인 민박이 제격이었다. 때문에 미리 민박집으로 가서 짐을 풀어두고 저녁에 히드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니 당장 아침부터 할 일은 숙소를 바꾸고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약속 시간에 맞춰 곰다를 만나러 가는 일이었다. 꼭 일을 마쳐놓고 가야 한다는 다급함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설렘이 마음이 급해졌다.


곰다도 나와 마찬가지로 런던을 꽤나 좋아한다. 곰다가 런던에 관해 환상을 품은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그 환상의 대부분은 런던의 아동, 청소년 문학들(대표적인 예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공이 큰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런던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곰다에게 이번 런던 여행은 열심히 번 돈으로 첫 유럽, 첫 런던이었기에 의미가 여러모로 컸다. 나로서는 그 여행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추억으로 함께 함이 참 감사했다.


그런 곰다를 약속 장소에서 마주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인츠에서 써니를 보았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그러고 보니 그때도 써니를 보고 울었다. 친구란 존재는 가끔 눈과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게 한다). 하지만 감동의 장면도 잠시, 우리는 곧바로 관광객 모드로 전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잦은 카톡으로 별다른 근황 나눔 없이도 자연스레 일상 토크를 시작할 수 있는 우리였다. 금세 런던의 여름 휴가 시즌 분위기에 녹아들었다고나 할까나. 수다로 가득 채운 우리 둘 사이에 런던의 풍경이 잠시나마 강남역 풍경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편안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기왕 곰다와 함께 하는 런던 여행인데 날씨가 너무 런던스럽게도(?) 좋지 않았다는 거다(응?). 먹구름에 비와 바람이 오락가락하는 날씨, 웬 영국 고전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폭풍의 언덕>이 따로 없다...). 우리들의 하루는 에프터눈 티로 시작되었다. 평소 홍차를 사랑하는 곰다는 런던에서 꼭 티를 마셔보고 싶어 했고, 세인트 마틴 레인 호텔(St. Martin Lane Hotel)의 티룸에 예약을 해 두기까지 했다. 맛있는 티에 따라 나오는 디저트가 끊이질 않았기에(무려 3층 디저트 탑!), 점심은 미련 없이 생략하기로 했다.





모두가 런던 브릿지라고 잘못 알고 있는 그 이쁜 다리, '타워 브릿지(Tower Bridge)'로의 산책에 나섰다. 기왕이면 템즈강변으로 걸으면 더 좋을 듯하여 제안한 코스였는데,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우산을 생명줄 붙잡듯 꼭 붙잡고 간신히 걸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하하). 걷는 길 도중에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에 진입한 우리는 몰몬스(Monmonth)카페에 들려 런던 현지의 플렛 화이트(Flat White)를 한 잔씩 즐겼다. 카페 내부에는 흑설탕 무더기를 무심하게 배치해 둔 테이블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이 카페도 오늘만큼은 텅 비어 있었다(분명 날씨 때문이다).


카페인을 들이켠 이후 제법 가까이 다다른 타워 브릿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들의 우산이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하며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아내며 그냥 웃기로 했다.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역시나 흐리멍덩한 게 누가봐도 런던에 와 있는 것처럼 나왔다. 어쩌면 쨍한 런던의 여름날보다 더 기억에 남을 강렬한 풍경이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보기로 한 날, 극장 앞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곰다는 개인 자유 여행을, 나는 히드로 공항으로의 마중길을 떠났다. 친구가 그토록 걷고 보고 싶었던 런던의 첫 모습이 비록 회색빛의 풍경이었지만 그 또한 아름답고 런던스럽게(?) 해석하는 여행이 되길!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곰다와 그렇게 헤어진 이후, 히드로 공항에서 부모님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이란!!! 거센 비바람에 비행기가 1-2시간 연착되는 바람에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지만, 오래 기다린 만큼 반가움이 더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딸내미만 믿고서 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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