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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Dec 06. 2020

99. 그래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석사 논문이라고는 하지만

17.08.21 월요일


그간 퇴고 작업으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그리고 데드라인을 목전에 앞둔 오늘, 드디어 석사 논문을 제출하러 루벤대 사회과학대 건물 행정실로 향했다. 이미 제본을 맡겨 놓았던 논문에서 문단 정렬 오류를 발견하고선 다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오전 11시에 논문 제본을 마쳤다. 캠퍼스에는 나처럼 'last minute'에 논문을 제출하러 온 동기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내 친구들이 어쩜 그렇게 많은 건지(역시 '유유상종'은 강력하다)! 방학 도중 마주한 동기들과 논문 제출까지의 고충을 나누고 나니 입도, 마음도, 머리도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졌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논문에 한창 찌들어 살 때 서로를 위로(?)한답시고, '괜찮아, 누가 석사 논문을 신경 쓰겠어! 마무리하는 데 초점을 두는 거지 뭐.' 하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전혀 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박사 논문만 논문인가, 석사 논문도 논문이야!'라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에 위로라는 포장지를 씌워주기 싫었달까.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마무리 한 나와 친구들의 석사 논문들이 비록 학문적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값진 시도였고, 다음 스텝을 위한 초석이었음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물론, 나의 석사 논문이 누군가에게 낭독해줄 만큼 자랑스러운 글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오히려 쥐구멍으로 숨고 싶달까). 하지만! '나 자신이 나의 논문을 가치 있게 여겨 주지 않으면 그 누가 나의 글에 주목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는 말해주고 싶었다. 때문에 캠퍼스에서 마주친 동기들을 붙잡고 사진을 찍으며 그간의 논문 집 필기의 고충을 신나게 나눴다. '그래, 이것으로 되었다'라는 심정으로. 


특히 폴란드 여행과 파리 여행을 함께 했던 마케도니아 출신의 E에게는 오늘이 뤼벤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논문 제출 후에 둘이서 괜히 구 시청사 앞에서 와플을 나눠 먹으며 훗날을 기약했다. 유학 시절 내내 나의 영화 메이트가 되어 주었던 E와의 마지막 놀이(?)로는 역시나 영화 관람이 제격이었다. 한국에서도 일찍이 화제작이 되었다는 영화 <덩케르크>를 함께 보고서 E와 작별의 포옹을 했다. 언젠가 다시 리스본 여행을 계기로 다시 만나고(E와 나는 리스본으로 여행을 가려다가 마땅한 비행기표를 찾지 못해 폴란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서로의 나라를 여행하자면서 그 날이 올 때까지 SNS로 연락을 꾸준히 이어가자는 말들이 밤을 가득 채웠다.


논문도 제출했겠다,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귀국 시 챙겨 가야 할 이른바 '여행지 짐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비싼 기념품을 따로 사 오지 않더라도 여행지에서의 팸플릿들을 하나둘씩 모아 오는 경향이 있는 나였기에, 1년 간의 여행 끝에 기숙사 방 한편에 쌓여있던 그 짐들이 정말 한 짐이었다. 그중 어떤 것을 가져가고 버릴 것인지를 고민하다가(결국... 많이 버리진 못했다. 대부분 그대로 한국까지 가지고 왔다) 우선은 여행지 별로 짐들을 분류해 보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치기로 약속했던 손편지들도 마무리 지었다. 귀국 한 달 전에 보내는 편지지만, 그래도 벨기에에서 부쳐 주는 게 더 아날로그 감성을 살릴 수 있을 듯하여 2박 3일의 더블린 여행(그렇다, 나는 그사이에 또 여행을 계획했다)을 떠나기 전 뤼벤 우체국에서 부칠 예정이었다. 



논문 제출 날의 아침상과 점심상(M과의 수프 타임)으로 대신했다.1년 간 고생 많았다며 나를 격려해준 M은 2박 3일 더블린 여행을 하루 앞둔 나에게 더블린 여행책자를 주고 갔다.
사회과학대 로비에서 마주친 동기들(다들 만세를 외치고 웃는다! Dobby is free!)과 논문 제본과 함께 인증숏을 찍은 우리들, 그리고 E와 구시청사 앞에서 와플까지!
논문을 제출하고 나서 기숙사에 돌아와 여행지 별로 정리해 본 '여행지 짐들'과 귀국 한 달 전, 한국으로 부칠 손편지 3통!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1년 간의 석사 생활을 마치고 E와 영화 <덩케르크>를 본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오늘이 뤼벤에서의 마지막 날임을 직시하고선 "It's odd." "It feels weird."라는 말만 몇 번이고 내뱉었는지. 도서관에서든 강의실에서든 가끔은 영화관에서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공부하고 고민하고 여행을 하던 친구였기에 당분간 각자의 자리 - 한국과 마케도니아 -에서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는 초연결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E와 나는 각종 SNS를 통해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오랜 친구들이 그러하듯,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안부를 묻다가 금세 본론으로 들어가 삶을 나누고 16-17년도의 뤼벤 유학 생활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코로나 위기 중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길 바라, E!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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