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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Dec 07. 2020

100. 네잎클로버의 한 잎을 떼어내도 좋아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방법 (1): 처음 찾는 여행지, 더블린

17.08.22 화요일 - 17.08.24 목요일


나와 유럽 유학 생활 간의 이별을 위해 나는 세 가지를 준비했다. 처음 찾는 여행지로 떠나볼 것, 눈에 밟히는 여행지를 다시 밟을 것, 그리고 일상의 여행지(기숙사부터 캠퍼스까지  아우르는 나의 주변)를 찬찬히 둘러볼 것. 그중 첫 번째로 더블린 여행을 선택했고 이런저런 재미난 인상들을 기록한 채 뤼벤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더블린을 여행지로 택하게 되었던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주벨기에아일랜드대사관에서 일하던 친구 M의 공이 컸다. M은 수시로 SNS 피드에 아일랜드 관련 게시물을 나눠주었고, 나도 알게 모르게 M의 아일랜드 선전에 익숙해졌던 거겠지.


토끼풀(클로버!)이 국화인 이 나라는 생각보다 다채롭고 소박하다. 더블린 구석구석은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들과 긴밀히 닿아있고 '힙'한 카페들 구석에선 커피 향이 뒤섞인 양모 장갑이나 목도리, 모자 등을 함께 팔고 있다(이곳에서 사 온 양모 반장갑은 지금까지도 애착 장갑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더블린 시내에는 펍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도시의 치안은 훌륭하고 주정뱅이들마저도 얌전한 것 같다. 이토록 점잖은 유흥거리는 처음이다.

대중교통의 디자인이나 기념품 가게의 열쇠고리와 봉제 인형들, 샐러드 가게의 포장지까지. 이 나라는 정말로 초록색을 사랑한다. 여기저기 푸르르다. 하지만 초록 초록한 아이콘들로 가득한 '성 페트릭스 데이'가 더블린의 공식 축제로 자리잡기까지는 200년이 걸렸다고 한다(보스턴, 뉴욕, 몬트리알 등지에서의 축제가 더 일찍이었던 셈!).



또한 2시간 동안 진행된 무료 워킹투어(이때, 무료 워킹투어란 참가비는 무료지만 투어가 끝나고 해설 가이드에게 기부제로 돈을 지불하는 형식의 투어를 말한다)를 통해 더블린과 관련된 재미난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더블린 시의 도시 계획은 바이킹 유물 발굴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유물을 발굴하기까지의 제한 시간이 달랑 6개월이었기에, 도시는 유물의 3분의 1만을 건지고서 정부 청사 건축을 시작했다. 역사적 가치가 무궁무진했을 유물들의 발굴을 완료하지 않다니, 문화유산 보존에 힘써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 간의 공존을 꾀하는 유럽 국가 치고는 의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걷고 있는 이 땅 저 밑에 바이킹 유물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발을 구르면서 땅 속의 바이킹 혼들을 괜히 깨워보고 싶어 졌다.

더블린 성 뒤쪽 도서관 옆으로는 높고 큰 성벽이 세워져 있다. 성의 정면에 위치한 언덕에서 봤을 때, 성벽 뒤편으로 더블린의 할렘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여왕의 시야에서 할렘가 풍경을 지우기 위해 세운 게 바로 그 성벽이라고 한다. 눈 가리기 아웅도 이런 아웅이 없다.

60년대 아일랜드 독립운동 당시, 커다란 오코넬 동상은 독립군들의 총알받이 역할을 해주었다. 천사 동상들 중 일부는 가슴에 박힌 총알 자국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더블린 사람들은 '불평하길 좋아하지만 딱히 개선책을 내놓는 습관도 없다' 고 하는데, 정말인 걸까.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도 그런 더블린 사람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가톨릭교도에 대한 차별의 아픔. 가톨릭계 아일랜드인들은 노예 중에서도 값싼 노예 대우를 받고 지냈다고 한다.

30년대 미국으로 갔던 아일랜드인들이 귀국하면서 재즈를 가져왔다. 아일랜드 교회는 노발대발했고, 성직자들 대부분은 음악 산업의 검열가 역할을 자처했다고 한다.

별명 하퍼 브릿지, 본명 웰링턴 듀크 다리! 더블린 시내에 있는 하얗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다리다. 이전에 이 다리는 '유료' 서비스였다고 한다. 때문에 가축 등이 지나다니지 않아 주변의 '무료' 다리들과는 차별성을 띠었고, 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명문대 트리니티 대학 캠퍼스에는 여학생 입학을 금지한다던 한 대학 관계자의 동상을 세워져 있다. 지금 캠퍼스를 누비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바라보는 동상의 표정이 꽤나 언짢아 보인다.



트리니티 대학의 고서가, Book of Kells! - 더블린 미술관에서 마주한 아일랜드의 또 다른 상징 '하프'!
하퍼 브릿지의 모습. 무언가 웨딩 사진에 어울릴 법한 디자인이다. 하얗고 아기자기하다.


아일랜드(더블린)도 영어권 국가였지만 영국(런던)을 찾았을 때의 익숙함은 없었다. 대신에 모르는 것 투성이를 대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조심스러움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더블린은 참 걷기 좋은 도시였다. 강을 따라 걸으며 소규모의 다리들을 하나둘씩 경험해 보는 것도 큰 재미였고, 자연스레 영화 <ONCE>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잔잔한 기타의 선율을 흥얼거리기도 좋았다(거리의 악사들 중 일부는 실제로 ONCE의 OST를 연주하고 있었다). 거리의 소음도 적당했고, 사람들은 관광객들에게 적당히 무관심하다가 적당히 친절했다. 나 홀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이만큼 매력적인 여행지의 조건이 있을까!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더블린이라는 도시, 아니, 아일랜드라는 나라 전체가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보다 행복을 상징하는 세잎클로버를 사랑한다는 점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일확천금과 우연이 가져다주는 드라마틱함 보다는 작지만 꾸준히 지속되는 습관을 소중히 하는 것만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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