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개의 선을 그으며 산다. '나와는 다른 사람, 비슷하지만 결국엔 다른 사람, 조금은 닮은 사람...' 하고서. 계속해서 외국어를 배우고 내게 때론 벅찬 주제들(이를테면 영혼이니, 거버넌스니 하는 그런 주제들)을 고민하는 습관을 들이려는 이유는 그렇게 매일 그어둔 선들을 조금씩 지워나가기 위해서이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며 어린이를 타자로 마주했다. 그러나 나 또한 '한때' 어린이였고, 지금까지도 가끔은 어린이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을까, 어린이는 타자인 동시에 나 자신인 느낌이 들게 하는 묘한 존재다 (그러니 앞으로는 스스로를 '덜 큰 어른'이라고 해둘까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속에 담긴 사연 중에는 '그땐 그랬지'하고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았고, 그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나의 기억'으로 굳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끼던 소지품(색종이를 사면 맨 뒤에 보너스로 들어가 있던 스티커 한 장, 리본 장식이 크게 박힌 책상 위 지우개 똥 전용 미니 빗자루 등)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선생님께서 따로 챙겨두신 걸 보고서 가슴을 쓸어내리던 경험, 어디선가 들은 '어른들의 표현'을 괜히 써보고 싶어 기회를 노리던 경험(내 경우엔 그게 '수고 많으십니다'였다), 고대 이집트 문명 특별전을 관람하고 나서 텅 빈 백화점에서 미라와 추격전을 벌이던 악몽(결국엔 미라에게 붙잡혔다)을 꿨던 경험...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의 내가 불쑥불쑥 소환됐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간 어린이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되돌아보았다. 책 제목이 적고 있듯, 어린이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만큼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258쪽)'했는데 말이다. 한 번은 같은 동 아파트의 어린이 이웃이 자기가 내려야 할 층에서 내리지 않고 "여기 살아요?" 하고서 문 앞까지 배웅을 해준 적이 있다. 어린이의 말이나 행동이 다소 산만했기에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이웃'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막상 '이웃처럼' 살갑게 다가오면 괜히 경계부터 하게 되는 현실이 참 슬프다) "어, 어 그래"하고서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애써 웃어 보이고선 집 안으로 후다닥 뛰어가다시피 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어쩌면 그 꼬마 신사가 양손에 짐을 한 가득 들었던 나를 집까지 무사히 안내해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머쓱해졌다.
알게 모르게 '그런 것까지 신경 쓸까?' 하고서 어린이를 선택지에서 제외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타자라고 하기엔 꽤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대상이 어린이가 아닌가. 판단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매일 선을 긋게 되지만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한 어린이라는 세계 쪽에는 선을 긋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하나 만들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무뎌졌을 나의 '작은 감각들'을 깨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