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예인(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빨간 책방에서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소개하면서 '죽음'이란 주제가 자신이 꾸준히 찾아 읽는 주제 중 하나라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 주제를 찾아 읽으면 괜히 동진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여 방송에 소개된 그 책을 사 읽었다. '죽음'이란 주제를 '자진해서' 찾아 나섰던 때다. 처음이었다. ⠀ 그 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얼떨떨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그저 그들을 위로해야겠다는 마음과 말만이 앞섰다. 그러나 빨간 책방 방송을 챙겨 듣던 때처럼 죽음을 자발적으로 찾거나 고민하진 않았다. ⠀ 그런데 최근 직장 상사의 빙부상 소식을 전해 듣고서 감정적 대응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죽음에 크게 관심을 갖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내 모습을 마주했고, 사회 생활력만으로는 수습이 되지 않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연휴 동안 독서 주제를 '죽음'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은 대략 이러하다. ⠀
<적당한 거리의 죽음>
나의 삶의 공간에는 죽음이 들어설 틈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멕시코 여행을 하고 온 친구가 기념품으로 건넨 '죽은 자들의 날(영화 <코코>의 시간적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축제)'의 해골 피규어 하나가 책장에 올려져 있을 뿐이다. ⠀ 건축학도인 저자는 죽음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서울의 도시 계획을 파리의 '공동묘지의 일상 공간화'와 비교하며 죽음과 삶이 뒤엉키지 못하는 서울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예시로 소개된 클림트의 <죽음과 삶>이라는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클림트 특유의 화려한 연출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만 여기기엔 삶에 끼치는 죽음의 영향력이 어마 무시함을 표현해낸다. 근데 그 모습이 끔찍하진 않다. 오히려 삶과 죽음을 골고루 살피며 지혜로이 삶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음에 관하여>
인문학적 성찰에서 그칠 게 아니라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죽음관(?)을 살피고 싶던 찰나, 팀 켈러 목사님의 신간 미니북을 발견했다. ⠀ 책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슬퍼하되 소망을 품으라.' 머리로는 문장 전체를 이해했다고 믿고 싶지만, 정작 가슴으로 받아들인 건 '슬퍼하되'라는 부분이다. ('소망을 품으라'라는 부분은 아무래도 내가 꾸준히 훈련받아야 할 부분일 듯하다. 뭔지 알겠으나 인간적인 마음에서 그게 가능할지 스스로가 참 의심스럽다.) ⠀ 예수님의 약속, 곧 죽음을 이기는 그 약속이 있지만,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굳이 말로 하고 적어 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 무절제하게 감정을 쏟아붓다가 나와 내 주변을 해쳐서는 안 된다. ⠀ 단 두 권의 책으로 죽음을 이해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외면하기만 해서는 건강한 성장을 바랄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는 있었다.
지난 2-3일간의 독서 기록을 정리하던 때에, 마침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의 '다른 별에서 온 소식(Merkwurdige Nachricht von einem anderen Stern)'에서 죽음에 관한 한 소년의 대사를 마주했다. 두 권의 책에 관한 마침표 혹은 질문과도 같던 소년의 대사를 적어둔다. ⠀ "Bei uns in der Heimat ist zwar der Tod nicht eben sehr gefurchtet, und die meisten gehen willig, und viele gehen freuding zu Verwandlung ein..." (우리 동네/고향에선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요. 대부분 저항하지도 않고 기쁜 마음으로 변화에 동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