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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1. 2020

3. 월플라워라 하지 말아 주세요

입국 날 연차를 쓰고 마중 나와 준  M을 개강 날 다시 만났다

16.09.26 월요일


이제 와서 밝히지만 (지금껏 외로운 척 다했으나), 뤼벤에 착륙하기 전부터 내게는 벨기에 친구가 한 명 있다(메롱). 내가 뤼벤에 복수학위생으로 왔듯, 이 친구 또한 복수학위생으로 서울을 찾았었다. 친구가 서울에 왔을 당시,  유럽연합센터의 조교를 맡고 있던 나는 유럽학생들의 대학원 도착 소식에 빠싹 했었고,  자연스레 친구의 서울 입성 소식과 출신 학교 등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같은 대학원을 다니던 중 가끔 따로 시간을 내어 서촌을 찾거나 캠퍼스 내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뤼벤에 도착하던 날, 친구는 무거운 케리어 두 개를 끌고 백팩까지 짊어진 나를 마중 나와 기숙사까지 배웅해 주었다 (이를 위해 연차까지 쓰고서!!!). 여러모로 내게 감동을 선사해 준 친구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 친구의 이름을 앞으로 M이라고 해두자(앞으로 종종 등장할 테니 말이다). M은 벨기에 사람보다 더 벨기에 같다고 할 정도로 벨기에를 사랑한다. 때문에 루마니아 태생인 M을 나는 그저 벨기에 친구라고 주변에 소개하는 일이 많았다. M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European Commission)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곳에 집을 구해 살고 있는데, 혹여 유학 생활로 마음이 지친 것 같다면 언제든지 놀러 오라며 내게 씩 웃어 보였다.



M은 쓰고 있던 안경을 툭 하니 카페 식탁 위에 내려놓고선 뤼벤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피 맛이 평범했던 거 같은데 또 기억은 '맛있게' 남아있다.

개강을 맞은 오늘, M이 뤼벤을 찾았다. 중앙 광장의 한 카페에서 Koffiepauze(Koffie는 커피, Pauze는 휴식을 뜻하는 네덜란드어다 [코피팡제]라고 발음한다)를 가지자고 메시지를 보내왔고, 중앙도서관에서 강의계획서들을 읽어 가면서 시간표를 점검하고 있던 나는 잠시나마 활자들에서 눈을 돌려 뤼벤의 예스러운 중앙 광장 풍경을 마음에 담아보았다. 구 시청사 옆쪽으로 나있는 이 광장은 디귿 모양을 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 카페/식당들이며, 이 가게 저 가게 별다른 특색 없이 같은 메뉴를 팔고 있다(그러니까 아무 곳에나 앉으면 그만이다).



 

뤼벤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은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나무 느낌이 도드라지는 이곳에 앉아 있으면 호그와트 학생이라도 된 느낌이 든다.




Kleine Aula라고 이름 붙여진 이 강의실은 유독 그리스 극장과도 같은 낡은 시설인데, 전공필수 교과가 늘 이곳에서 수업을 열어 애증의 강의실이 되어 버렸다.

[코피팡제]를 마친 후, M과 다음을 기약하고선 헤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강의실을 찾아갔다. 뤼벤 대학교라 해서 한국 대학교/원의 첫날과 크게 다른 건 없었다. OT가 연이어 이어졌고, 중간중간 특별 강연이 마련되어 있었다. 교수님들은 연신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하면서 인사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곳에 공부를 하러 왔다는 게 더더욱 실감이 났다. 몇 분 전만 해도 M과 신나서 수다를 떨었는데, 강의실을 메운 동기들 사이에서 낯을 가리고 있다니. 때마침 옆 자리에 앉은 영국인 친구 E(이 친구는 BBC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가 말을 걸어주어 그나마 첫 수업 날, 월플라워(wallflower: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인기가 없는 사람) 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To. Readers

uns(우리에게: [운스]): '그때 참 고마웠었는데' 하는 친구는 누구였는지. 무엇이 그리 고마웠었는지. 말을 걸어주어서? 귤을 나눠 먹자고 해서? 노트를 빌려줘서? 나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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