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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2. 2020

4.개강 날 잔디밭에는
칠링(chilling)이 가득

알록달록한 새 학기 노트 대신 돗자리를 챙겼어야 했을까

16.09.28 수요일

짭조름한 토마토 수프(자율 배식, 수프 컵의 종류에 따라 1유로 혹은 1.5유로)에 바게트 반쪽(0.5유로), 이걸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련다.

뤼벤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1교시 수업은 논문 지도 교수님의 수업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들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는 꽤나 거창한 수업이다. 매주 읽기 자료에 관한 1 -2장짜리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게 꽤나 부담스럽지만, 유럽 국가들의 역사관이 궁금했던 찰나에 좋은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놀랍게도 국사 책 도입부에서 늘 등장하던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뤼벤대 첫 수업에서도 등장했다. 


거창한 수업 주제와는 달리, 사실 나는 아침밥을 부지런히 챙겨 먹고 기숙사를 나가는 버릇을 들이지 못한 탓에, 수업 내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까 마음을 졸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근처에 있는 학식 건물(이름하야 Alma1: 1이 있다는 건 2도 있다는 이야기 ;))으로 찾아가 첫 끼니를 해결했다. 아침의 학식당은 혼밥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샌드위치 하나와 수프 하나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 시, 학생증을 꼭 보여주라던 OT 내용을 기억하고선 푸른색의 학생증을 내밀었더니, 할인 금액으로 가격이 조정되었다.



역사 수업의 다음은 유럽 환경 정책에 관한 수업으로, 파리기후협약으로 환경 분야 국제협력에 들떠 있는 유럽연합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환경 정책에 관한 기본적 개념들을 공부해 나가게 된다. 수요일은 역사와 환경 정책 정말 흥미로운 수업들로 가득한 날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교시 역사 수업 이후 환경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3-4시간의 공강이 있다는 거다. 강의 사이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적지 않게 중요할 텐데, 공부... 를 했으면 더 뿌듯했을까, 싶지만 이제 막 벨기에에 와서 개강을 한 시점, 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뤼벤과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큰지라, 발이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걸어보기로 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개강 전과 후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도대체 OT 장소에서 마주했던 그 많던 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역시나 조용한 동네인 걸까, 하면서 Alma 1을 지나 작은 듯 큰 듯 애매한 크기의 공원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세상에! 거리에서도 학식당에서도 마주하지 못했던 학생들이란 학생들은 전부 다 공원 잔디밭 위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유럽 사람들이 언제나 햇빛에 목말라 있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또래들 마저 개강 초입부터 저렇게 일광욕을 즐길 줄은 몰랐다.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chilling: [칠링]) 벨기에 학생들 중에는 심지어 가방도 들고 나오지 않은 학생들도 많아 보였다. 에코백에 필통과 다이어리, 그리고 지난날 Fnac에서 사 온 알록달록 벨기에 노트를 고이 모셔(?) 온 내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풍경이었다(노트 대신 돗자리를 챙겼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유럽을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 돗자리를 챙기는 건 전혀 유럽인의 삶이 아니라는 걸.......). 그룹으로 모여 앉아 있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홀로 덩그러니 잔디밭 위에 앉아 '햇빛을 쬔다'기보다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듯해 보이는 학생들도 많아 보였다.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라(한국에선 웬만하면 다들 그늘을 찾아 움직이니깐) 잠깐 동안 주변 벤치에 앉아 공원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그러나 금세 지루해져서 구 시가지 쪽으로 계속 걸어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공원에서 몇 시간을 칠링 할 만큼 뤼벤과 친해지진 못했다 아직. 




그 어디를 향해 걷더라도 뤼벤 구 시청사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구 시청사는 사진 왼편에 보이는 노란 빛깔의 건물로, 뤼벤의 상징, 관광지 및 웨딩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 


 

등굣길 늘 지나치게 되는 이곳(위 사진 참조)은 뤼벤의 중심과도 같다. 뤼벤은 학생 도시이자 은퇴를 맞은 노부부들이 이사해 오는 '동네(도시보다는 동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로, 중세 시대 때부터 명맥을 이어온 뤼벤대학교의 건물들이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여느 대학처럼 큰 캠퍼스가 있다기보다는, 도시 전체가 곧 캠퍼스인 셈이다. 도시는 크게 뤼벤 링(ring)이라는 동그라미 안의 구역과 바깥 구역으로 나뉘는데, 학교 건물들은 링 안에 밀집해 있다. 참고로 나의 기숙사 워터뷰(Waterview)는 링 바깥에 있지만 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위 사진 속 광장에서 15-20분이면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덕분에 시끄럽게 파티를 부리는 학생들의 소음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유후).  일광욕을 즐기는 학생들을 지나 구 시청사 앞까지 걸은 나는 며칠 전 M과의 [코피팡제]를 떠올리며 광장 주변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혹 특색 있어 보이는 가게가 있을지, 하면서. 




To. readers

uns(우리에게: [운스]): 버튼을 누르면 칸막이가 튀어나오는 필통을 입학 선물로 받고선 학교에 가져가길 아까워했던 때가 있었다. 학년이 몇 번이나 바뀌고 학교도 그에 따라 바뀌었지만, 교실을 처음 찾던 날 어떤 물건을 가방에 챙겨 넣지, 하는 고민은 여전하다. (...) 출근길에 오르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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