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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3. 2020

5. 키다리 아저씨 Y와 함께한 토요일

때아닌 명절의 끝은 벨기에식 홍합 요리로!

16.10.01 토요일


출국 전, 아빠와 학창 시절을 공유하는 친구 분(일명 Y 아저씨)이 벨기에 안트워프에 사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빠는 Y 아저씨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나를 수신 참조하며 '가끔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봐 줘'라고 적었고, 그렇게 나는 Y 아저씨에게 부탁당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 10월의 첫째 날, Y 아저씨께서 뤼벤에 놀러 오셨다. 아저씨와 나는 만나자마자 쇼핑카트를 끌었다. 유학생활에 보탬이 될 생활용품 및 식료품을 하나씩 카트에 담으시면서 "이거 맛있다, 이거 먹어봐라", "우유는 안 필요하나?... 생선은 구워 먹나?" 하면서 이것저것 골고루 계산대까지 가져가셨다. 기숙사 바로 옆에 있던 Albert Heijn 마트, 그 큰 마트를 구석구석 살핀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장보기를 마친 우리는 뤼벤 링 안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식당을 가장한 한식당'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뤼벤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싹싹 긁어서 다 먹었다). 짜장면을 먹은 후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다이소 비슷한 분위기의 잡화점을 지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멀티 어댑터가 없어 무쓸모나 다름이 없어진 쿠쿠 밥솥이 떠올랐다. 과감히 7유로를 투자해 멀티 어댑터를 구매했다(기숙사에 돌아와 콘센트에 쿠쿠 밥솥을 연결하자마자 들리는 띠링, 하는 전자음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 없었다).




살림살이는 사면 살수록 끝이 없다. 생선을 구워 먹냐고 물으시던 Y 아저씨께서 사주신 청어 한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점심 전 쇼핑과 점심 후 쇼핑으로 끝날 줄 알았던 아저씨와의 첫 만남은 저녁식사까지 이어졌다. 아저씨는 뤼벤에 오신 김에 주변에 계신 한국 분들(주로 이곳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었다)과 함께 식사를 하자고 미리 연락을 취해 놓으신 듯했다. 워터뷰 기숙사 근처, 옛 맥주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어느 식당에서 모인 저녁식사 멤버들은 너도나도 벨기에 홍합 요리를 주문했다. 깊숙한 냄비 통째로 서빙되어 나오는 벨기에식 홍합 요리는 부피만 클 뿐이지, 사실상 '1인 1 홍합 냄비' 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홍합 껍데기가 차지하는 부피가 있으니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은 거다. 홍합 요리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간단했다. 포크를 쓸 필요도 없었다. 빈 홍합 껍데기가 곧 포크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빈 홍합 껍질로 다른 홍합의 살을 집어서는 후후 부는 시늉을 하다가 입 안으로 쏙 들이밀면 그만이다.




폐 맥주공장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변신시켰다고 한다. 시원시원하고 모던한 디자인은 사실 공장 특유의 넓찍한 규모와 커다란 기계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설계였다고 한다.
유럽의 감자 인심 하나는 정말 알아줘야 한다. 벨기에 1인 1 홍합 냄비 정식의 모습은 대략 이러하다. 2만원...정도 했던 기억이...




Y 아저씨는 하루 종일 나를 든든히 먹여 주셨다. 연이은 쇼핑으로 헤어질 때가 되자 두 손이 제법 무거워졌다. 때아닌 명절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자그마한 기숙사 방에 쇼핑 품목들을 늘어놔 보니 어버버 해지는 느낌이다.






To. Readers

uns(우리에게: [운스]): 마니또, 멘토, 짝선배, 선생님 등... 자연스레 '키다리 아저씨'가 떠오르는 그런 이름들이 있어요. 그들이 안겨다 주는 감사, 감동은 주로 예상 밖이어서 불쑥 찾아오는 소나기를 닮았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저는 오랜만에 Y 아저씨에게 이메일을 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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