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4. 2020

6. 평범한 하루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중간고사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는 등하굣길 풍경들

16.10.04 화요일



아무 사건사고 없이 하루를 마무리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계획대로 모든 게 흘러갈 거라 자만하는 순간, 어디서 어떤 변수가 휘리릭 날아들지 모르기도 하고. 때문에 평범한 하루였어, 하고 말하는 건 '안정적이었어', '평온했어',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았어', '또 하나의 일상이었어'라는 감사의 표현을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다.


기숙사에서 강의실로 향하는 루트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일전에 소개해 준 구 시청사 앞을 지나가는 방법인데, 오늘은 그 루트 대신 좀 더 빙 둘러서 강의실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다 보니 새로운 풍경들을 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자의 걸음은 분홍색 방울꽃(이런 꽃은 처음 봤다)을 파는 꽃집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Mirte란 이름의 꽃집화려한 꽃들보다는 푸릇푸릇한 식물들을 더 많이 가져다 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검은색 간판 위 회색 빛깔의 폰트로 깔끔하게 치장한 간판을 걸어 두었는데, 언뜻 보면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 인상을 풍겼다(아쉽게도 올리브 오일에 구워진 마늘향은 맡을 수 없었지만).


Mirte란 이름의 꽃집 옆으로 자그마한 부띠끄 가게들이 많았다. 주말에 놀러 와 보기 좋은 골목 같다.



영국 아마존에서 express 주문을 하자 굉장히 빨리 받아 볼 수 있었던 중간고사 범위 책들. 오른쪽 책은 EU에 관한 입문서로 참 괜찮았다.

점심을 Alma 1(학식당)에서 가볍게 때우고선 TGPE(Transnational Global Perspectives of Europe)이라는 이름의 전공 필수 교과목을 들으러 갔다. 한국과는 달리 뤼벤대학교에는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와 과제물들로만 이루어진 수업들이 많다. 하지만 유독 이 TGPE 수업만은 예외다. 개강 1주 차부터 '한 달 후 중간고사를 치르겠습니다' 하고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겁을 주던지! 그 겁주기 전략에 보기 좋게 넘어간 나는 OT가 끝나자마자 영국 아마존에서 빠른 배송 옵션으로 중간고사 교재를 주문했고 (놀랍게도) 하루 만에 택배를 받아 들 수 있었다. 돈만 얹어주면 유럽도 충분히 '배달의 민족'을 자처할 수 있음을 이번에 깨달았다. 택배 상자 속에는 유럽연합과 유럽사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한 데 모아놓은 듯 해 보이는 책 두 권이 톱니바퀴 모양의 뽁뽁이(?)들로 포장되어 있었다.





수업 후, Lavazza에 커피를 사러 가는 도중에, 법대 건물 옆 빵집(Antoine)에 잠깐 들러 아침에 먹을 곡물빵 하나를 구입했다.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부드러운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중간고사 스트레스가 휙 가셨다. 기숙사로 돌아갈 일정만 남은 마당에, 좀 더 거리에서 멍을 때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커피잔을 들고 있지만 사실 뤼벤의 Lavazza는 아이스크림 맛집이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눈앞에 자전거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여느 유럽 대학생들처럼 뤼벤 학생들 또한 자전거와 매우 친하게 지낸다. 암스테르담만큼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자전거 행렬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Fonske 소년상(지식과 지혜를 머리 위에 쏟아붓는 소년상으로 뤼벤의 상징물 중 하나) 옆의 커다란 버스 정류장 옆으로 자전거 주차장이 크게 마련되어 있으며, 워터뷰 기숙사 또한 세탁실을 갖추고 있진 않아도 대형 자전거 주차장은 갖추고 있다(아마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자전거들이 뤼벤에 있을 거다).

자연스레 자전거 중고 장터 또한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와 친하게 지낸 나 또한 1년간 중고 자전거 하나를 구해  자전거 등, 하교라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해 볼까도 싶었으나, 구매 및 대여 조건과 보증금, A/S 제도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나머지 나는 일찍이 뚜벅이로 뤼벤을 누비자고 다짐했다.






자전거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kleine aula 강의실 앞을 지나다닐 때는 혹여 자전거에 옷이나 스카프가 걸릴까 싶어 조심조심 걷게 된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비일상이 일상이 되는 때가 있다. 코로나로 인한 어제오늘이 특히 그렇다.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비일상의 일상화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되돌아본다. 그중에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많다. 가보지 않은 길을 산책길 삼아 잠시 걸어보는 것,  빵 굽는 냄새를 맡고서 홀린 듯 빵집으로 들어가는 것, 커피 한 모금으로 향기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소확행'이 우리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 또한 '평범한 것들'의 '평범하지 않은 특성들' 때문은 아닐지를 질문하게 되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다. 평범한 하루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여겼던 16년의 기록을 떠올리며.







매거진의 이전글 5. 키다리 아저씨 Y와 함께한 토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