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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철학

에스프레소를 질문하며

by 프로이데 전주현

매번 에스프레소 샷을 시키는 이유가 무엇이야.


잔이 귀엽잖아. 제아무리 작은 손도 에스프레소 잔을 들면 거인손이 된단 말이지.


잔만 이뻐서 뭐해, 잔에 담긴 내용물이 중요하지.


진액이잖아. 커피콩들이 제각각 아주 밀도 높게도 자신을 뽐내고 있는 게 바로 에스프레소라고. 그 진한 맛에 익숙해지면 그냥 커피는 물 맛만 입에 맴돌아서 영 불만족스러울 거야.


그래, 진한 맛이라 치자. 그럼 설탕은 왜 꼭 따로 달라고 해. 커피콩들의 진한 맛이 설탕에 묻혀버리면 어쩌려고.


일종의 해피엔딩이지. 진한 맛을 견디다 견디다 즐기기까지 한 스스로를 위한 선물인 거야. 설탕 두세 스푼 넣고서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안 된다 너. 쓴 맛에 들이킨 에스프레소 잔, 그 잔 밑바닥에 설탕이 고스란히 남아있게 해야 해. 그게 바로 해피엔딩의 핵심이라고. 에스프레소에 녹다만 설탕 입자들을 숟가락으로 서걱서걱 긁어모으는 거야. 그리고 달그닥 달그닥 소리를 내면서 입 안으로 해피엔딩을 밀어 넣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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