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향

책상에 심은 튤립을 보며

by 프로이데 전주현

그 사람이 내게 건넨 것은 조화 튤립이었다. 잔뜩 비구름을 머금은 공기 중에서도. 장맛비가 지나간 파란 하늘 아래에서도. 튤립은 한껏 노랗게 돋보였지만 결코 향기를 풍기지는 않았다.


향기 없는 꽃을 두고 무얼 해.


그렇게 무심히. 책상 한편 연필꽂이에 튤립을 꽂아두었다. 참 부자연스럽게도 꽂아두었다. 그러고는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노란 것을 잊고 지낸 것도 오래.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그제야 나 여기 있소, 하고는 튤립이 연필꽂이에서 툭 떨어져 나온다.


아 이거.


오래간만에 쥐어보니 그새 좀 야윈 것도 같고 좀 낡은 것도 같고. 그러다 속는 셈 치고 코를 가까이 대보니, 어라. 살금살금. 조금씩. 꽃 향기가 움트고 있다. 겨울에 비로소 피었구나. 피어버렸구나. 튤립을 어디다 심어야 할까를 놓고 한동안 책상 앞을 지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