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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판 가득한 다리와 나누는 진득한 악수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by 프로이데 전주현

속을 좀처럼 알 수 없는 바다는 신비롭고 무서운 존재다. 그 속에 소용돌이라도 치고 있는 건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다가 좋다. 모래사장 근처에서부터 진하게 풍기기 시작하는 바다내음을 즐길 정도로. 생애 최초의 스펙(?)으로 물과의 친화력을 한껏 자랑하는 '아기스포츠단 펭귄반'을 꼽을 정도로. 바다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따금 해양 생물을 궁금해하는 호기심으로 이어지곤 했는데, 그 예로 한때는 혹등고래에 빠져 북유럽 어딘가로 날아가 해수면 위로 숨을 쉬러 나온 혹등고래를 보는 게 버킷리스트라며 수다를 떨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물론 국내여행마저 어려워진 요즘, 가장 최근에 찾은 바닷가가 어디 있는지, 언제 바닷바람을 맞았었는지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B로부터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 맛집이다"라는 평과 함께, <나의 문어 선생님>을 추천받았다. 퇴근 후 주중에는 시간을 들여 영화 한 편 보기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든) 부담스럽지만, 주말 중에는 '무엇이 나를 막을쏘냐' 싶은 마음에 영화 한 편, 다큐멘터리 한 편, 혹은 책 한 권 정도는 거뜬히 소화하며 지낸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본 건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이다.


! Weak Spoilet Alert!


들다, 어렵다, 싶은 시기를 맞은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남아공의 한 해변가를 찾았다. 어린 시절 바다 수영을 하며 한없이 평화로웠던 때를 떠올린 그는 오래간만에 가진 휴식 기간 동 매일같이 바다로 나갔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그와 교감하며 우정(?)을 쌓게 되는데, 그 대상이 바로 문어다.


인지 능력이 뛰어난 문어는 눈치껏 감독이 위험한 사람이 아니며, 자신에게 관심을 지니고 있고, 어쩌면 '무해한 인간'이자 친구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다리를 쭉 뻗으며 (빨판으로) 찐한 악수를 하더니, 나중에는 반려견이 같이 놀자며 애교를 부리듯 감독의 배 위에 올라가 안기기까지 한다. 문어와의 교감 덕에 감독은 심신을 회복해가는데, 그 과정이 꽤나 감동적이다. 생각해보라, 문어와 인간 사이에 신뢰 관계가 맺어질 수 있다니!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문어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게 틀림없다. 저 감독은 내 친구가 되고도 남아, 하는 그런 무언가가.



두 주인공(감독과 문어)의 우정 일지를 보는 내내, 또 한 가지 나의 마음을 앗아간 것은 바닷속 풍경이다. 육지와 바다를 구별 짓는 상징으로 나무를 떠올릴 때가 많은데, 어쩜 문어의 생활공간이 된 남아공의 '그 바다'는 바닷속에도 나무가 있었다(심지어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자막은 그를 '다시마 숲'이라고 적고 있는데, 감독이 기다랗고 억센 다시마 줄기를 로프 삼아 문어가 있는 바다 밑으로 수영을 할 때마다 나는 나무 기둥을 더듬으면서 하늘 가까이에서 육지로 내려오는 동물 모습을 떠올렸다. 특히나 해수면을 기준 삼아 육지와 바다가 미러링 되는 것만 같은 경에 몇 번이고 우와, 하는 감탄사를 입 밖으로 냈는지 모른다. '웬만하면 다 아는 풍경일 텐데 뭐' 하는 순간, 자연은 매번 '요건 몰랐지'하면서 나를 놀라게 한다.


다큐멘터리가 끝을 향해 갈 즈음, 바닷속 풍경과 해양 생물의 모습이 첫인상과는 다소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도 감상에 재미를 더했다. 주인공 버프를 받은 문어에게 몰입해 있는 상황에서 천적인 파자마 상어의 헤엄이 그렇게 꼴불견일 수가 없다(물론 상어에게도 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싸늘한 건 싸늘한 거다). 또한 다큐 초반부에는 문어의 눈이 자동차 와이퍼의 삐뚤한 직선 모양을 닮아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귀여운 눈웃음의 실눈으로 보이질 않는가! 두 발로 몰래 걸어 다니는 모습도 어찌나 천연덕스럽던지! 이런 이미지 메이킹에는 다큐 전반에 깔린 배경음악의 효과가 컸다.




B 덕분에 오랜만에 바다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를, 그것도 넷플릭스에서 즐겼으니 새롭다면 새로운 경험이었다. 진심은 인간이건 문어 건 가리질 않고 통한다는 점도 새로이 알았다. 바다 생태계가 잔혹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그 덕에 멋진 풍경이 연출되고 바닷속과 밖의 생명체들이 삶을 지속해 나간다는 것도 재확인했다. 감독의 문어 선생님이 내게도 (어느 정도) 선생님이 되어준 게 고마웠다. 하지만 왠지 빨판 가득한 다리와 진득한 악수를 하는 기분은 오로지 감독만이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선 나의 문어 선생님을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궁금하다... 그런 진득한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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