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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붙드는 고집에
미나리 씨앗을 흩뿌립니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거든!", 영화 <미나리>를 보고

by 프로이데 전주현
... I just want to say 'Minari' is about a family. It's a family trying to learn how to speak a language of its own. It goes deeper than any American language, any foreign language. It's a language of the heart and I'm trying to learn it myself and to pass it on, and I hope we all learn how to speak this language of love to each other, especially this year. (정이삭 감독,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소감 중에서)


외국어영화상 수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의 골든 글로브 수상소감 중, 영어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닌 '사랑의 언어(language of love)'를 영화에 담으려고 했다는 부분에 확 마음이 갔다.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말이다. 영화야말로 '나라 국(國) 자가 붙는 것들(국적, 국경, 국어...)'을 뛰어넘는 종합예술인데 정작 (할리우드) 영화계는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영화 <미나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 노미네이트'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아직 후기를 남기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수식어가 따라붙다니! 역시 핫하다 <미나리>!). 그러나 내가 <미나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때는 지난주 목요일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과 함께 국적 논란과 할리우드 영화계의 차별적 평가 기준이 도마 위에(그것도 정중앙에!) 올랐을 때였다. 때문에 나는 (미국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미나리>의 어떤 부분이 '외국어 영화'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이국적(내 기준에는 한국적)'이었나, 하는 질문에 주목하면서 영화관 조명이 꺼지고 켜지길 기다렸다. 그러니 아래 적어두는 감상문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노미네이트의 요소 하나하나를 고려한 감상문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그럴 능력도 되질 않고).






대학원 시절, 한 학기 동안 이주와 이민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유럽 난민 위기와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장벽 세우기, 한국 사회 내 외국인 커뮤니티의 성장 등이 시사 문제로 주목을 받던 때였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한 데 모인 강의였기에,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읽기 자료와 발표 준비 또한 영어로 해야 했고, 장문의 영어 주관식을 시험 문제로 푸느라 제대로 힘을 잔뜩 주게 되는 강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주/이민 수업에서 첫 번째 과제를 받았다.


"여러분 가족의 이민/이주 역사를 발표해 보세요"


꽤나 사적인 주제를 다뤄야 하는 과제에 불현듯 떠오른 건 '이사' 그리고 '상경' 뿐이었다. 그러나 'A에서 B로 이동했다'는 것만으로는 이주/이민 역사라 적기에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움직임(movement) 그 이상의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나리> 속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 부부가 그랬듯이.




! Strong Spoiler Alert!


두 번째 꿈, "에덴동산"

부부는 (아마도 한국에서) 병아리 감별사 기술을 익혔다. 미국으로 건너왔고, 할머니 얼굴을 아직 보지도 못한 둘째 데이빗(앨런 김)을 키우고 있다. 대도시에서 지내며 한인 교회도 출석하며 그럭저럭 지내온 듯하다. 아메리칸드림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렇지만 제이콥이 두 번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가족을 아칸소(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인도 알기 어려운 깡촌이라고 한다)의 트레일러 집으로 데려오더니, 그곳에 에덴동산을 지어 보이겠다고 한다.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한국 식자재 농사를 지어 납품을 해보겠다 한다. 포부가 얼마나 컸던지, 에덴동산 계획 앞에서 제이콥은 더 이상 삐약삐약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트레일러 집을 마주한 모니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트레일러 집을 안팎을 이리저리 살피는 내내 미간이 펴지질 않는다. 결국 모니카는 아칸소 라이프를 견딜 수 있도록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게 해 줄 '누군가'와 '무언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제이콥 또한 그런 모니카를 위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꾹 깨문다. 짐작컨대 그 '무언가'로 모니카는 한인 교회를 꼽았던 것 같다. 제이콥과는 달리, 모니카에게 한국은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친구였고, 그런 의미에서 한인 교회는 미국 내 소수로 살아가는 한국 이주민이 조금은 덜 긴장하며 지낼 수 있는 공동체였다. 하지만 깡촌 아칸소에 한인 교회가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제이콥이 한국과 교회를 향한 방어적 태도를 잠시 접어두고 가족을 데리고 간 곳은 백인 교회다. 친구를 사귈 수도, 영혼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던 교회였지만 모니카의 '무언가'가 되어주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리는 가까스로 채워졌다. 관객이 흔히 '할머니'라고 부르는 인물, 바로 모니카의 친정 엄마 순자(윤여정)가 트레일러 집에서 지내게 된 거다.




고춧가루와 화투, 그리고 미나리 씨앗

바리바리 싸들고 온 봉지 꾸러미들로 트레일러 집이 가득 찼다. 고춧가루를 포함한 한국 식자재가 대부분인 듯하다. 엄마('할머니')를 마주한 모니카는 눈을 가리면서 눈물을 참거나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처음 마주한 손자 녀석에게 화투를 보여주면서 '어릴 때부터 익혀둬'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건넨다. 이 모든 게 데이빗에게는 영 '할머니스럽지 않다'. 억척스럽다. 할머니라면 응당 쿠키도 구워주고, '한국 냄새'도 나지 않으며, 영어도 잘해야 하는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할머니가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국적을 가릴리는 없지만, 나는 할머니야말로 <미나리>를 이국적/한국적으로 보이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고 질문했다. '컨테이너집으로 들어온 게 결국은 의인화된 한국이 아니었을까'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제이콥 모니카 부부가 할머니를 아칸소로 부를 수밖에 없던 상황이 정이삭 감독이 '미나리'를 'water parsely'라고 적지 않고 'minari'라고 적어둔 고집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뿌리를 붙드는 고집이다.


이주/이민은 에덴동산의 꿈을 꾸게 할 정도의 동력, 생명력을 가진다. 그러나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다시 제대로 깊게 내리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나의 출발점, 부르면 달려와 주는 나의 사람, 나의 언어, 친구, 공동체... 그런 뿌리 말이다(그리고 보니 영어로는 가족의 (유구한) 전통, 계보를 두고 'family tree'라고 하질 않는가!).


원예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얕은 분갈이 지식으로 추정컨대, 생명이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을 견디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삽으로 뿌리째 들어내 져서 새로 더 깊게 파 놓은 구덩이에 옮겨 심어지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성장을 위해서, 꿈을 위해서라는 점에서 박수받기 마땅해 보였고, 제이콥 모니카 부부의 아칸소 생활도 그래 보였다.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알아서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 줘.



출처: 네이버 영화 <미나리> 페이지



<미나리>를 보고서 이주/이민 강의의 첫 번째 과제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이주/이민에 움직임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고, <미나리>가 그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70년대 미국 땅으로 향했을 제이콥 모니카 부부 1, 부부 2, 부부 3... 에게 할머니가 아칸소까지 가져갔던 미나리 씨앗을 쥐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응원의 일환이었다.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알아서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 주니까, ' 어디선가 열심히 뿌리 운동을 하고 있을 가족에게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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