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언덕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대학생이 되어 하숙 생활을 하던 시절, 윤은 종종 인왕산 자락에서 퇴고를 했다. 윤은 글씨체가 예뻤다. 그의 문장은 떠들썩하지 않았고, 문단은 기도문을 소담히 담아낸 밥상 같았다. 윤은 부끄럽다며 볼을 붉히기도 전에 어깨를 움츠리는 버릇이 있었고, 릴케를 읽다가도 사촌동생과 술잔을 기울일 만큼 적당히 사회적이었다. 존경하던 스승이 윤의 첫 시집에 서문을 써주었을 때, 윤의 가슴은 발을 한껏 구르며 날아올랐을 텐데. 시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크게 도약하고서 빨리도 나이 들었을 텐데. 광복 4년 전에 숨을 거둔 이래 윤은 언제까지고 청년으로 회자되고만 있다. 오빠라는 이름이 별이 되어 윤에게 콕 수놓아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