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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위로 펼친 우산

약속 장소에서 너를 기다리다가

by 프로이데 전주현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카페에 앉아 너를 기다리며 음료를 주문할까도 했지만 저녁을 같이 먹고서 마실 커피 맛이 좀 더 강렬했으면 했다. 아쉬울 대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기로 했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며 걷고 있으니 공원 한편에 나 하나쯤 앉아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그래도 혹 발을 쭉 하니 뻗고 앉았다가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이 걸려 넘어지면 어쩔까 싶어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우중충한 비구름이 갖은 폼을 잡고 있었지만 폼이기만 할 뿐 비는 아직이었다. 나 여기 있으니 끝나면 이리로 와, 하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사진 속 날씨는 유독 더 안 좋아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너는 내 사진을 보고서 달려올 거고 많이 기다렸지 하면서 숨을 고를 테니까.


여름 습기에 선선한 바람이 더해져 주변이 촉촉해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맞은편 벤치에도 한 사람이 앉았다. 다리를 꼬더니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보기 드문 광경인걸. 책은 두껍지 않아 보였는데 저 정도 두께면 시집이 틀림없었다. 누구의 시집일까 하는데 콧잔등에 톡 하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약속시간은 아직이었다. 그렇다고 실내로 비를 피하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네가 일찍 올 것 같았다. 그때 함께 비를 피하는 게 더 멋지지 않을까. 오른편에 비스듬히 세워둔 장우산으로 손을 뻗었다. 앉은자리에서 하늘 위로 우산 하나 펼쳤을 뿐인데 밖도 안도 아닌 묘한 공간이 생겨났다. 맞은편에서도 우산 펼치는 소리가 났다.


찰박찰박.

찰박찰박.


빗길을 오가는 구두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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