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의 재판에 뫼르소만 없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서

by 프로이데 전주현

지금까지의 독서 경험에 미루어 보건대, 소설 한 페이지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은 등장인물과의 관계 형성이었다. 등장인물을 연민, 응원, 비난하거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고 완독 후에는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특별히 소설은 등장인물과 싸움을 한 판 벌이든 얼싸안고 울든 끝장(?)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개는 그를 향해 약간의 애정을 품은 적이 많았다(심지어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를 향해서도). 그러나 카뮈의 이방인은 조금 달랐다. 얜 왜 이러는 거지? 하는 물음이 가시질 않았다. 1부에서는 그 물음의 강도가 조금은 약했다. 소설 첫 문장의 강렬함,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 장... 상심이 크겠어, 그간 많이 지쳤구나 하며 그를 토닥이며 나란히 걸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며 1부가 마무리되었고, 일종의 법정 드라마와도 같이 2부가 시작되었다. 지금껏 읽어온 정을 생각해서라도 거봐 내가 경고했지 하는 핀잔이라도 늘어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형을 낮추거나 피해보려는 노력조차 않는 뫼르소를 비난하지 못했다. 뫼르소와 감정적으로 거리두기를 했달까. 감정적으로 가까워진 쪽은 오히려 오히려 검사, 증인, 국선 변호사였다. 그들이 한심해 보였다. 강압적으로 보였고. 뫼르소의 재판에 뫼르소 자신을 배제시키다니 웃고 넘어가기엔 퍽이나 우스운 상황이었다. <페스트>의 카뮈가 다소 고전적이고 정형적인 느낌을 주었다면 <이방인>의 카뮈는 무언가 좀 더 사실적이고 근대적인 인상을 준다. <이방인>을 소설(roman)이 아닌 이야기(récit)라 부르고 싶다던 카뮈의 말이 훅 하고 들어온다.


+번역이 잘 된 건지 원문이 잘 쓰인 건지(둘 다일 가능성이 크지만), 뭐 이렇게 후루룩 잘 넘어가는 문장들이 많은 건지, 하는 물음 또한 답하지 못했다. 원문을 살필 수 있을 정도로만 불어 실력이 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