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이" - 산타가 다녀간 자리에서 산타 옷을 입어볼까 해
16.12.06 화요일
그간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오늘에서야 회복한 듯한 느낌으로 일어났고(기숙사 방을 채워주는 라디에이터의 온기만으로도 춥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회복한 게 틀림없다) 두 다리에 힘을 싣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프고 난 뒤는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한없이 감사해진다. 골골거리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강의실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이 말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오후 늦은 강의 후 돌아오는 길에 크리스마스 꼬까옷을 입은 구 시청사의 조명 테스트를 구경했다. 조명 없이도 화려한 구 시청사의 건물에 파란색과 보라색 빛이 동시에 들어오니 여기가 내가 지내는 '모범생 도시' 뤼벤이 맞나, 싶다. 11월 중순부터 준비하던 크리스마스 장도 조만간에 들어설 것 같다.
그러고 보니 12월 6일인 오늘은 성 니콜라우스의 날이다. 유럽 아이들은 이 날을 편히 '산타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방학만큼이나 아이들이 가장 많이 기다리는 날이지 않을까. 산타는 빈 손으로 오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산타(?)는 일찍이 12월 6일을 맞을 아이들을 위해 사과와 오렌지, 견과류와 사탕 등의 깜짝 선물을 준비해 둔다. 크리스마스 때 받는 선물보다는 좀 더 가벼운 시즌 선물인 셈이다. 준비된 선물은 건빵 같이 생긴 쿠키의 부스러기와 함께 아이들이 집 안 어딘가에 걸어둔 (선물 수거용) 양말 안 혹은 아이들의 방문 앞으로 전달된다. 언제나 그랬듯, 산타의 배달 작전은 치밀하다(신속 배달!).
산타를 만난 지 꽤 오래되었던 나는, 성 니콜라우스의 날이 내 일상에는 아무 변화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래, 나는 즐기지 못하더라도, 너희들이라도 신나게 보냈으면 되었지' 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어서 기숙사로 향했다. 감기가 다 나은 것 같기는 하지만 '오늘 까지만큼은 조심하자'라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공동 주방 냉장고에서 주스를 하나 꺼내 마셔야지!'라는 생각만으로 기숙사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달달하고도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기대하고선 공동 주방의 문을 연 그때, 어지럽혀진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쿠키 부스러기들... 산타가 다녀갔다!
사실 처음에는 그 부스러기 더미 모양새가 너무나 지저분해 보여서 '아니 누가 공동 주방에서 음식을 해 먹고 나서 이렇게 뒷정리도 안 하고 갔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워터 뷰 기숙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접속해 유사 범행(?)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올라온 글들의 내용을 살피고, 오늘이 성 니콜라우스의 날이라는 걸 떠올려 보니, 맙소사, 이 부스러기들은 기숙사에서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자세히 보니 부스러기 더미 뒤로 귤 상자가 한 박스와 와플 한 묶음이 놓여있었다. "귤은 1인당 5개씩 가져가세요, 해피 성 니콜라우스의 날!" 하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오렌지 주스 대신 귤 다섯 개를 품에 안고서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산타를 만났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운이 좋게도 나는 지금껏 수많은 산타들을 만나왔다. 그것도 계절에 상관없이. 때문에 누군가의 산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리지 않고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려 한다. '나도 이렇게 남을 세심하게 챙길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간다. 2020년, 나의 주변에는 어떤 산타들이 있었을까. 산타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했던가. 나는 누군가에게 산타가 되어주었던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무엇보다도 선물 생각에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