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굽는 마음

이재경 엮음의 <고양이>를 읽고

by 프로이데 전주현

어떤 노년을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 일흔이란 시간이 내게 허락된다면 낯선 이에게 건넬 수 있는 사탕을 주머니에 몇 알 넣어 다니는 할머니(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아메오바짱이라 불렀던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또 날마다 거실에서 고양이 한 두 마리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되고 싶기도 하다. 온기를 찾아다니는 고양이를 마음에 계속해서 품다 보면 나 또한 따스한 사람, 빵 굽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긴다.

더러는 고양이의 눈빛이 자신의 오점을 꿰뚫는 것 같아 무섭다고 하지만 ‘그래, 다 알고 있어’ 하는 고양이의 눈빛이 나는 오히려 좋다. 옥춘 사탕과 은하계 그 사이 무언가를 닮은 눈동자에 넋을 잃고 만다. 달콤하고도 날카로운 무언가가 고양이의 시선이 되어 내 안의 무언가를 들여다본다. 분명 무언가 보았을 텐데 녀석은 여전히 우아하게 걷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피할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피할 수 있다는 식의 여유를 보인다. 친구보다는 선배 같은 느낌이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리스본 서점’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샀다. 정확히는 세계 각지의 문인들이 고양이에 관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담아 놓은 것, 원문의 일부를 표기한 것, 고양이 민화를 표지 삼은 것, 제목에 Katze라고 독일어가 적혀 있는 것, 섬뜩하지만 좋은 카프카의 글이 실려 있는 것, 성경책에서만 보던 책갈피가 책에 달려 있는 것, 이런 이유로 충동구매했다.

가볍고 단편적이여서 지하철에서 읽기 좋았다. 고양이를 향한 글쟁이들의 표현은 달랐지만 시선은 한결같이 애정 어림을 확인했다. 헤르만 헤세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함께 놀아주던 뢰버(Löwe: 독일어로 ‘사자’라는 뜻으로 헤세의 반려묘 중 하나)가 생각났고 언젠가 나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쓰기 메이트가 되어 줄 고양이를 상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엮은이의 산문과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 문구가 가슴을 울린다. 야옹 하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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