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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Feb 02. 2023

사자를 찾습니다

월간 지음지기: 2023년 2월 “고백"

바니와 야크, 그리고 그들을 돌보기 위해 밤마다 아파트 경비실 앞 의자에 앉는 한 여인을 생각하며






(시작 인사)


예뻐하는 것에 관한 글쓰기는 최대한 미루는 편이다. 결심 끝에 글을 쓰기 시작했더라도 그를 향한 애정이 실시간으로 쌓이는 상황이라, 그와 관련된 “최상의 (가장 신선한)" 애정 표현을 글 속에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쉽다. 마침표를 찍었는데 무언가 끝나지 않은 느낌, 꼭 쌉싸름한 뒷향이 진한 한약을 들이켠 기분이 든다. 침을 꿀떡 넘겨 목구멍을 정리하고 싶어 진다. 괜히 몸이 가렵다.


하지만 미룰 만큼 미룬 건지, 주제에 따라서는 아예 쓰지 않는 것에서 조금이라도 쓰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쌉싸름함이 숙성 시간을 거쳐 달큼해지려면 일단 쌉싸름함을 준비해 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항변을 하면서 말이다. 미리 밝혀 두자면 이 글은 미루고 미룬 끝에 쓰는 글이다. 할머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미래에 반려 삼고 싶은 고양이, 함께 살 주인을 ‘간택한다'라고 알려진 고양이에게 부치는 일종의 광고문이다. 여기 이런 예비 집사가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염원을 담은 기도문이다.





첫사랑은 사자 (지원 동기)


고양이에게 반한 극적인 사건은 따로 없지만,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상상하기 시작한 순간은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반복해서 읽던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한 흑백사진을 보았다. 헤세가 네 발 기는 자세로 엎드려 반려묘 뢰뵈(Löwe; 독일어로 ‘사자‘라는 뜻)를 뒤쫓아가는 장면이었다. 


평소 헤세에게선 무언가 앙상하지만 절대 부러지지 않는 나뭇가지 같은 인상을 받곤 했는데, 사진 속 헤세는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저 신이 나 보였다. 엉금엉금 기면서 뢰뵈를 불렀을 거라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반면에 뢰뵈는 개의치 않음과 신경 씀 그 어느 중간 지점을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뢰뵈가 ‘이리로 올테면 와보라지'와  ‘이리로 오고 있는 거지?’ 하는 두 마음을 비추고 있었다. 앙칼지면서도 다정한 분위기였다. 


헤세가 무언가를 쓰기 전에도, 쓰는 도중에도, 쓴 후에도 저 사자 녀석이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헤세의 작업실뿐만 아니라 우아한 문장 사이를 거닌 유일한 생명체가 뢰뵈일지도 몰라. 틈틈이 그의 첫 독자가 되어 주었을 수도 있지. 헤세가 노트와 책상 앞을 떠나고 싶을 때 무릎 위에 턱 하니 올라와서 몸을 웅크리고 그르릉 소리를 내며 졸았을 수도 있어. 얼마나 귀여웠을까. 그러다 헤세가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계속 혀와 손톱으로 몸단장 비질을 열심히 해가며 호흡을 골랐겠지. 그렇게 헤세를 진정시켰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나도 곁에 두고 싶어졌다. 다정한 고양이 한 마리를. 





아마도 혈연이겠지 (학력 사항)


혹 자그마한 취향도 가족 대물림이 되는 거라면, 고양이를 향한 나의 애정은 엄마로부터 온 게 틀림없다. 더러는 고양이의 두 눈이 꿍꿍이를 파악할 수 없어 무섭다고 단정 짓지만, 엄마는 고양이의 눈에서 깊고 넓은 우주를 보고 잘 닦은 보석의 빛을 받는다고 했다. 높이 뛰어오르려고 몸을 한껏 웅크리는 모양새가 오케스트라의 튜닝처럼 섬세하고 기분 좋은 긴장감을 전해준다고 했다. 앞 발을 가지런히 쭉 뻗은 채로 서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어느 도자기의 그림자처럼 얌전하고 멋스럽다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문득 국사 교과서에 줄곧 등장하던 고려청자의 모습을 떠올렸고, 엄마는 뢰뵈 뒤를 밟던 헤세처럼 고양이를 다정하게 부르며 따라갔다. 고려청자가 머릿속을 스쳐가고서야 "같이 가!" 하고 엄마를 불러 세운 날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시작했던 엄마의 고양이 예찬론은 내 마음에도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이제 막 시동을 끈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가 뚝심 있는 표정으로 빵을 굽는 길고양이들처럼 참 묵직하게도. 그래서일까,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사자 한 마리 곁에 없지만, 에코백에 영양제와 츄르 몇 개는 넣고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날 길고양이들을 기대하며 집을 나서는 날이 많아졌다.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왔다는 친구의 소식을 들은 날이면 미래의 고양이에게 부치는 고백을 친구에게 대뜸 해버리기도 했다. “애옹 하고 아기처럼 울다가도 암살자 같은 민첩함으로 분위기를 확 사로잡잖아. 고양이는 꼭 연극배우 같아!" 하고서.





야옹 하는 대답 (경력 사항)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무렵, 엄마는 우거진 나무를 뜻하는 이름의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두 마리의 길고양이와 안면을 익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몇 번이고 마주쳤던 녀석들인데, 알고 보니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며 내게 그 둘을 소개해 주었다. 단순한 길고양이가 아닌 이웃이란 생각에 엄마는 ‘밥은 먹고 다니려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한 손에 간식 바구니, 다른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서 밤마다 아파트 경비실 앞 의자에 앉아 있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야옹아," 하고 한 번 부르고선 간식 냄새를 풍기며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단다. 그러니 머지않아 "야옹" 하는 화답이 있었고, 조용히 주변을 맴도는 녀석이 둘이나 되었다고 했다.


두 녀석 중 한 녀석은 야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야크는 윤기 나는(꼭 벨벳 천처럼 반짝인다) 턱시도 차림을 하고 있으며, 사람과 최소한의 거리를 두며 지내는 모범 길고양이다. 먼저 엄마나 나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무리 사이에서 꽤나 대장 역할을 했다는 소문을 달고 다닌다. 그러고 보니 카리스마가 있다. 자동차 바퀴 옆이나 수풀 한가운데처럼 단독 식사 공간을 선호하며, 생선살과 닭가슴살을 좋아한다. 생선살을 입에 물었을 땐 절대로 남들에게 식사 장면을 보이질 않으려 한다. 아무래도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은 즐거움인가 보다. 


야크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다. 전형적인 K-고양이 털옷 (흰색과 겨자색, 갈색의) 삼색저고리를 입고 있지만, 정작 동네 주민들에게는 색이 반반 섞였다는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불리는 친구, 바로 바니다. 바니는 애교와 호기심이 넘치는 말괄량이다. 바스락하는 츄르 포장지 소리만 들려도 엄마 곁으로 쪼르르 다가와 고려청자같이 앉아 있다. 너풀거리는 실오라기 하나라도 눈앞에 드리우면 금세 집중을 하고선 사냥 본능을 불태우는 성격이다. 그때마다 어찌나 탄력성 있게 움직이는지 몸에서 탱탱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엄마의 간식 조공이 한 두번으로 그치지 않자 야크와 바니도 마음을 열었는지, 이제는 엄마의 지팡이 소리가 아파트 정문 앞에서 나기만 해도 "애옹"하고 보일러실에서 튀어나온다. 재미난 점은 야크가 왼편에서 나타나면 바니가 오른편에서 나타나고, 야크가 오른편에서 나타나면 바니가 왼편에서 나타난다는 거다. 그때마다 무대의 대각선 방향으로 총총 뛰어오르는 무용수들처럼 서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와 몸통을 쓱 비비고 지나친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쓱 걸어와 다시 한번 진한 스킨십을 보여주며 ‘우리 왔어요' 하는 메시지와 함께 춤을 마무리한다. 


엄마는 야크와 바니 덕분에 매번 멋진 공연을 본다고 감탄한다. 그리고 당장 자신의 손에 고양이 간식이 없다며 크게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야크와 바니의 야식을 챙겨 주러 한밤중에 집을 나선다. 집에 들이지만 않았을 뿐이지, 야크와 바니는 엄마의 사자, 뢰뵈가 되었다. 





(마무리 인사)


앞서 밝혔듯, 이 글은 한참 동안이나 쌉싸름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예정이다. 내게 고양이는 여전히 미루고 미뤄뒀다가 쓰고 싶은 대상이니깐. 그 때문에 오늘도 핸드폰 사진첩 속에 담긴 길고양이의 사진만으로도 폴더 두 개는 거뜬히 만들고도 남을 것처럼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책상 위와 서랍 안에 고양이 오브제를 하나둘씩 쌓아가며 사니깐. 아직 네 발로 기어가면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애정하는 반려묘를 집에 들이지도 못했으니깐. 그 때문에 <거실의 사자>를 읽고, 어느 수의사의 고양이 동영상을 챙겨보며, 집사 간택을 받은 친구의 일상을 유심히 지켜보니깐. 


그러니 부디, 이 글의 쌉싸름함이 달큼함으로 변할 정도로 시간이 지나길! 그땐 부디, 사자를 곁에 두고 살기를! 그때까지 부디, 고양이를 공부하고 있기를! 야크와 바니와의 인연에 기대어, 바라고 또 바란다.








위 글은 지음지기의 프로젝트 ㄱ(기역)의 일환으로 쓰였습니다. "사자를 찾습니다"를 읽고 그리는 사람(최정연 작가)이 그린 그림의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자를 찾습니다" 그림 보러 가기: https://blog.naver.com/choijungyon/223008118730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지음지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drawnnwritten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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