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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20. 2020

22. 여행의 마침표가 줄 수 있는 에너지

건전지를 톡 하고 바꿔 끼우듯, 일상은 흐른다

16.12.13. 화요일


여행을 끝마치고 난 후의 감정이 썩 맘에 든다. 그 마음은 평소에 잊고 지내던 보금자리를 바라보게 한다. 일상을 일상답게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지난 2박 3일 독일에서의 나는 이랬지, 하면서 추억할 거리들을 던져 준다. 그리고 그 추억 거리들 중에서 유독 환히 빛나는 친구들에게 인사말을 건네게 해 준다. 에너지가 교체되고 기억과 생각이 상호작용하며 말들이 오간다. 전자제품의 건전지를 제대로 바꿔 끼울 때 '톡' 하는 그 소리, 그 소리를 닮았다. 무언가 잘 맞아떨어졌고, 제대로 교체되었으며, 여전히 이전처럼 작동하게끔 힘을 준다.






기차 내부에 '곧 뤼벤에 도착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뜬다.


며칠 비웠던 기숙사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밥 생각이 났다. 여독도 잊고서 곧바로 Albert Heijn 슈퍼마켓으로 식재료를 구하러 갔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이렇게 (꽤나 자주) 몸의 양식을 채우는 것으로 시작되곤 한다. 길건 짧건 해외여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순두부찌개를 주문하고서 식사를 기다리는 그 마음, 그 마음으로 기숙사에 짐을 내러 두자마자 장보기 일정에 나섰다. 12월의 뤼벤은 슈퍼마켓에 들어서더라도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끔, 아주 시기적절한 꽃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덕분에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는 내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장을 보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삼겹살 한 팩과 곁들여 먹을 루꼴라와 토마토를 카트 담았고, 굳이 살 필요는 없었던 나초 한 봉지를 집었다.










쾰른 하인젤멘혠 크리스마스 마켓의 글뤼바인 컵과 향신료 리스, 본 베토벤 하우스에서 사온 베토벤 곰돌이까지!



몸의 양식을 어느 정도 채웠다면 이제는 빨랫감을 가방에서 꺼낼 차례다. 짐을 푸는 과정이 있지 않고서야 일상으로 복귀하는 충전, 전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조심스레 가방 속 물건들을 바닥에 늘어놔 본다. 이때 여행지에서 조금씩 사 모은(?) 기념품들도 함께 일지의 빛을 보게 된다. 신기하게도 여행지에선 특별해 보이지 않던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들이 일상생활 공간에서는 참 특별해 보인다.


내일을 시작할 힘이 차고도 넘친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지금, 나는 주변 공간들을 여행지 삼아 다녀보기로 했다. 마스크를 챙기고 잠깐 다녀오는 슈퍼와 카페. 출퇴근길. 하다못해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길 마저도... 무언가를 채우거나 비우거나 시작하거나 끝내러 가는 여정이겠거니, 하고서 임한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고나 할까. 코로나로 인해 되돌아본 나의 모습 중 하나는 내가 꽤나 여행을 당연시하고 즐겼구나, 하는 것이다. 당장 어디로 떠나볼 수 있을까. 우리들의 오늘 여행지, 내일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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