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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Apr 20. 2023

계속되지 못하는 대화

월간 지음지기: 2023년 4월 "동그란 등불"

사물에게서 사람의 얼굴을 볼 때가 있다.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신호 같은 것이 그 사물을 통해 내게로 전달되는 기분이. 동물원 전시장의 뱀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처음으로 마법과 독대하는 해리포터나 오랜 모피 코트 보관옷장에 묘하게 끌리더니 나니아 연대기의 문을 연 루시가 떠오른다.  


하지만 방금까지 표정 비슷하던 걸 짓던 사물은 안타깝게도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듯 입을 꾹 닫 나를 모른 체한다. ' 2023년 한국이지, 참' 하면서. 물건과의 대화가 끊기자 상상도 멈춘다. 사물과 나, 오로지 두 오브제만이 남는다. '돌아온 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건 그때부터다. 오늘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했다. 판타지 소설 같은 일상을.


사물과의 대화라니, 어린 시절의 놀이 같은 건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다. 아니요, 지금도 일어나는 일인데요. 나는 최근 방문했던 케이크 가게의 전등을 떠올렸다.




한두 입이면 손에서 사라져 버리는 작은 케이크를 판매하는 . 전등은 포장대 옆 계산대 위에 달려 있었다. 전체적인 실루엣 볼주머니에 식량을 가득 담은 다람쥐를 닮았는데 위쪽에 땡그란 동그라미 두 개까지 눈처럼 달려 있 꽤 그럴싸한 상상이다. 진한 목조 건물을 구석구석 밝히기보다는 듬성듬성 비추는 빛을 발하고 있었고 빛깔은 오렌지 크림색. 다람쥐의 털 색깔 닮은 빛, 가을날의 산책로를 뒤덮은 낙엽의 빛. 눈을 편안케하는 색이었다.


울철 난로가에 앉아 바닥에 일렁이는 불의 그림자 같은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난로가처럼 피부에 직접 와닿 온기는 없었지만 마음 깊숙이 따스함 같은 게 전해졌다. 그때였다. 전등이 볼주머니를 우물우물 움직이더니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내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건.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하는 가게 점원의 말이 우리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결제 카드를 챙기라는 점원의 손짓에 전등은 단념하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요히 빛을 발하는 데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아니군.' 케이크 포장 봉투를 건네받고서 터덜터덜 가게를 나왔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위 글은 지음지기의 프로젝트 ㄴ(니은)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동그란 등불"을 보고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지음지기의 그리는 사람(최정연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해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최정연 : https://m.blog.naver.com/choijungyon/223080132526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rawnnwritten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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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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