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지음지기: 2023년 5월 "폭풍 치던 날의 하늘"
옅은 회색빛 기운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었어. 그 정도로 층이면 하늘색이 진해질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날씨는 힘알탱이가 없었지. 오랜만에 헛간을 구경 나간 거였는데 속상했어. 날씨는 곧 분위기고 분위기는 예언을 뒤집는 변수 같은 건데, 변수가 꽝인 걸 어떡해. 점술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말한 대로 된 게 아니겠소” 하며 힘을 주어 말했을 거야.
오래간만에 찾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라테를 시켰는데, 멋진 라테아트가 올려진 잔을 건네받는 날 있잖아. “이쁘다,” 감탄하고 사진으로 라테 잔을 찍어 두고 싶은 날 말이야. 그런 날, 어쩌다 동행이 있었던 거지. 이제 막 두 살 된 조카 녀석이야. 내가 사진을 찍기도 전에 기다란 유리 머들러를 컵 안에 훅 집어넣는 녀석이지. 머들러가 알록달록해서 조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녀석이 워낙 장난꾸러기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조카는 손가락 끝이 조금 잠길 정도로 “훅!” 참 거칠게도 머들러를 컵 안으로 내리꽂았어. 무언가 풍덩 빠진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는지 [머들러 9할, 손가락 1할]의 레시피로 라테아트를 휘휘 젓고 섞어 버리더라고.
그래서, 그날의 하늘색이 어땠냐고 물었지?
구름을 닮았던 아트는 뭉개지더니 컵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어. 진흙탕보다도 못한 무언가가 되어버렸지. 우유는 온 데 간 데 없고 구렁텅이를 닮은 한 잔만 남았지. 조카가 “이모!” 하고 부르더니 라테 잔을 내게 건넸지. “어 어 그래,” 하면서 잔을 넘겨받았는데 손에 커피가 조금 묻어 나오더라.
그때 들이킨 한 모금, 딱 그 한 모금 같았어.
<하늘을 보고 싶지 않구나>, 최정연 : https://blog.naver.com/choijungyon/22309757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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