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라 부를 만한 공간 속에서 냄새가 뒹굴고 소리가 떠다닌다. 근처에 있던 나의 몸과 마음을 건드린다. 공간과 나를 분리하면서 두 가지를 융합시키는 경험이다. 내 딴에는 공간감이라 부르는 감각인데, 주로 추억을 곱씹을 때 생생해진다.
오랜 공장이 미술관이 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추억한다. 폭넓은 경사로가 미술관 로비와 바깥을 잇는 곳, 그곳에 방문객들이 모여든다. 모래사장에 앉듯 미술관 바닥에 길게 앉는 모습이다. 높은 천장으로 삼삼오오 소리가 집결한다. 고딕 양식의 성당보다는 위압감이 적어 견딜만하다. 공원에서 들을 법한 복합적인 소리, 이를테면 종달새의 노래나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바스락 밟히는 잔디와 근처 횡단보도와 신호등에서 나는 경보음, 그런 소리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대신 전시품 사이를 걸었다가 작품 앞에 멈추었다가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불규칙적이다 참. 와다다다 뛰는 어린이의 에너지 옆에는 그를 단속하려는 부모의 손길도 함께다.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데 연륜조차 한몫하질 못한다.
한눈에 담기 어려운 공간, 운동장 같은 공간. 그를 위쪽 계단에서 내려다볼 때의 기분은 묘하게도 나를 붕 뜨게 했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유사 자연을 전시했던 곳에서, 이제는 철거된 <날씨 프로젝트>의 인공 태양으로 날아올랐던 걸까. 이카루스의 마음과 무엇이 달랐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런던을 다시 찾아야겠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