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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복시

코블렌츠, 독일

by 프로이데 전주현

서울의 한 골목길. 대여섯 개의 지지대를 곁에 둔 고목을 마주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주변을 살펴보니 근처에 현판 하나가 보인다. 보호수라 적혀있다. 가느다란 울타리도 나무 주변을 두르고 있다. 이 이상 접근하면 안 된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지면을 침대 삼아 누운 현상이다. 멱살 잡힌 채 끌려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잡아당기는 쪽과 당겨지지 않으려는 쪽이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멱살 잡힌 대상의 에너지가 찢겨 나간다.

나무는 보호받는다고 느낄까.
긍정하기 어려웠다.

가는 비가 질리게 내리던 가을날. 한국에서 챙겨 온 땡땡이 접이식 우산을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기댄 채 코블렌츠(Koblenz)의 강변을 걸었다. 독일 라인강과 모젤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도시로, 포도주와 해상 교통 거래로 유명한 곳이었다. 궂은 날씨 때문이었는지 강변엔 사람이 없었고, 친절한 독일인과 우연히 나눈 스몰 토크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근처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나 했다.

그때 재미난 표지판을 보았다. 삼각형 표지판인 걸로 보아 경고와 주의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은데, 거꾸로, 그러니까 역삼각형으로 뒤집혀 있었다. 테두리 색도 눈에 익은 붉은색이 아닌 초록색이었다. 테두리 안에는 독수리가 날아오르는 이미지 하나와 함께 나투어뎅크말(Naturdenkmal)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직역하자면 자연을 생각한다, 기억한다는 뜻으로,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각종 보호종에게 붙이는 이름이었다.

근처에 골골대는 나무 한 그루라도 있는 걸까.

지지대에 간신히 제 몸을 의지하던 골목길 고목이 떠올랐다. 우산으로 짓누르고 있던 시선을 잠시 풀어 땡땡이 천 바깥쪽으로 목을 빼보았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고목이 보였다. 위풍당당한 자태가 꼭 표지판이 담고 있는 독수리의 비행 모습 같았다. 거대해서 그렇지 모양새는 소나무와 비슷했다. 표지판 말고는 나무를 속박하듯 붙드는 지지대도, 압박하는 울타리도 없었다.

보호수이지만 오히려 네가 주변을 지키는 것 같구나.

오래된 것, 낡은 것의 모습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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