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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03. 2020

35. '마망' 교수님과
'조개껍데기' 안에서

ESSEC 비즈니스 스쿨 겨울 계절학기 노트(2)

17.01.02 


파리 신시가지의 풍경은 지금껏 내가 경험해 온 파리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서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신시가지 중심의 어느 쇼핑몰(라데팡스의 일명 '조개껍데기'라 불리는 CNIT 건물) 한편에 ESSEC 비즈니스 스쿨의 라데팡스 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캠퍼스라고 하기엔 매우 매우 매우 좁은 공간이지만, 강의실 몇 개에 휴게실과 학교 로고가 떡하니 걸려 있으니 캠퍼스라고 하련다. 메인 캠퍼스인 세르지 캠퍼스와는 달리 'executive'을 위해 '파리의 맨해튼' 라데팡스 지구에 설치한 강의 공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시설이 놀라울 정도로 좋고 커피머신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오예!). 


1주일(정확히는 5일간) 이곳에서 들을 수업은 'Semiotics and Communications(기호학과 커뮤니케이션)'으로 경영대 수업들 중 가장 덜 경영스러운 수업 중 하나다. 경영학 수업에 유독 혀를 내두르는 나이기에 최대한 인문학적 특성이 많이 돋보이는 수업을 고른다고 12월 초에 ESSEC 홈페이지에서 강의계획표를 얼마나 뒤졌는지 모른다. 질적 연구방법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언젠가는 visual analysis/description을 제대로 활용해 보고 싶은 학생으로서,  기호나 상징, 아이콘 등이 광고를 비롯한 콘텐츠들 중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쓰이는지를 공부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이고, 나의 학업/연구 관심 분야와 연관이 있는 수업인지를 모두 고려해 볼 때, 꽤나 구미가 당기는 수업이었다.


파리 신개선문(왼쪽)과 개선문 정면에서 바라본 라데팡스 지구의 풍경(중간). 가운데 사진 왼편에 위치한 '조개껍데기' CNIT 건물에 강의실이 있다(오른쪽 사진: 건물 내부 로비)


수업은 (다행히도)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가 수준의 불어'를 구사하는 나에게 프랑스에서 불어 수업이 아닌 수업을 찾아내는 건 꽤나 도전적인 일이었다. 물론 ESSEC은 국제학생들의 비중도 많아 영어 수업들도 많이 제공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수업을 골라낸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까, 관심이 가던 이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는 점은 큰 감사 제목임에 틀림없다. 


교수님의 성함이 'maman(마망... 어... 엄마?)'이셔서 자기소개를 듣자마자 외울 수 있었다. 평생 마망 교수님으로 불리셨을 걸 생각하니, 학생들과의 관계가 보다 더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마망 교수님께서는 이전에 군인 경력을 지니셨다고 하시면서 '내가 누구냐면 말이야' 하는 식의 자기소개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선 수업 첫날답게 수업 주제인 기호학의 역사적 기원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ESSEC 라데팡스 캠퍼스 내부(왼쪽)과 마망 교수님의 수업 자료들(오른쪽)


왠지 모르게 나의 최애 팟캐스트인 '빨간 책방'이 떠오르는 수업이었다. 광고와 마케팅 전략을 분석하기 위해 마련된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내겐 아무래도 광고 회사의 전략에 얽힌 스토리텔링 수업처럼 보인다.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왠지 그 작업이 문장 연습과 소설의 구조 짜기 연습과도 맥락이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여담이지만, 라데팡스 캠퍼스가 위치한 쇼핑몰에서 사 먹는 바게트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었다. 수업이 마친 후에도 저녁거리로 하나 더 사갈 정도로 맛있었다. 역시 믿고 먹는 프랑스 빵!

그러나 아가 불어를 구사하는 나는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음식/음료 주문하고 계산하기' 미션을 수행하는데 3일 정도가 걸렸다. 교과서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갔을 대화에 갖은 변수들이 생겼었다. 예를 들어, 'sur place ou emporter(here or to go)?'와 같은 생활 불어 문장을 익히지 않고 대뜸 내가 불어로 주문을 하는 바람에, 점원에게 대뜸 영어로 'Pardon me?' 하며 부끄럽게 말을 건네기도 일쑤였다. 또 한 번은 샐러드를 사다가 '바게트 빵 하나 서비스로 넣어줄까요?' 하는 문장을 못 알아들어서, 'Pardon me?'카드를 한번 더 쓰고야 말았다.

그러나 시행착오가 있었던 덕에, 3일째에는 수업시간에 배운 '음식/음료 주문하고 계산하기' 대화문에 생활 불어까지 섞어가며 무사히(아주 다행히도) 그리고 덜 민망하게 가게를 나올 수 있었다. 아가 불어 구사자의 파리 생활기는 나날이 험난하다. 그러나 간판 하나라도 더 읽고 음료수 캔에 적힌 문구 하나라도 따라 읽어볼 수 있어서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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