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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Dec 14. 2023

부지런한 아침

루벤, 벨기에


  바른생활 도시 루벤(Leuven)에선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18시 이후로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고, 규모가 큰 슈퍼마켓도 20시까지만 영업했다. 그 이후 시간대의 외출은 도서관, 지역 어학센터 강의실 아니면 바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날이 대다수였는데 그럴 땐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한국의 심야 시간대 라디오를 네다섯 시에 들으며 지구가 둥글다는 걸 실감했고 저녁 끼니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다 올빼미답지 않게 이른 시간에 잠이 들면 다음날 내게 허락된 동굴 같은 방 한 칸에서 벗어나려고 부지런을 떨었다. 한국에선 적막한 곳을 찾으려 시간을 쏟는 반면, 타지에선 조금 소란스러운 장소를 찾아다녔다. 말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집중이 더 잘 되었고 입맛도 도는 기분이었다. 


  벨기에의 김밥집 같은 파노스(panos)나 엑스키(exki)에 자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빵 진열대를 구경하며 '오늘은 무엇이 채워지려나' 하는 생각과 함께 커피를 마시곤 했다.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등교 혹은 출근 전에 요깃거리를 포장해 가는 청년, 곡물빵을 품에 안고 돌아가는 할머니. 사람 구경으로 시작하는 하루라니, 전날 들었던 라디오의 진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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