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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Feb 19. 2024

티본스테이크 앞, 잔이 비었습니다

피렌체, 이탈리아

 레스토랑 스탭은 예약자 명을 확인하고선 하얀 식탁보가 깔린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예약까지 하고 갔다는 건 지갑 문을 평소보다 조금은 더 열어두겠다는 결심 같은 거였을 텐데, 우리는 어째서인지 앞에 놓인 커다란 잔을 채우는 대신 물리기로 했다. 습관이었다.

탄산수 하나에 메인 요리와 파스타를 각각 하나씩 하고, 샐러드 하나와 디저트까지. 코스의 모양새를 갖추긴 했는데 식사 내내 알 수 없는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메인 요리의 육질과 요리법의 한국의 것과 달라서인지 당장 눈에 보이는 비계층이 없는데도 느끼한 무언가가 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뒷 테이블에 혼자 온 손님이 눈에 띄었다. 메인 하나와 큰 잔 하나를 독대하다가 옆 테이블을 향해 슬쩍 말을 거는 모습이 단골 같았다.

'커다란 잔을 채울 걸 그랬나.'

미슐랭 스티커들이 입구 벽면을 뒤덮은 풍경을 보면서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평소 먹고 마셔 본 사람이 제대로 주문하고 돈도 쓴다는 걸 니글니글하게 체험하며 가게를 나왔다. 다음번엔 꼭 테이블 위 모든 것을 채워 보겠다면서.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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