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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Mar 16. 2024

동굴로 들어가는 촬영 기술

피렌체, 이탈리아

핸드폰을 바꾸는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였다. 줄어든 배터리 수명, 용량 부족, 그리고 더 좋은 폰 카메라의 등장. 앞의 두 요인이 기존 기기의 결함 때문인 반면, 마지막 요인이 기술 발전 덕분인 게 눈길을 끈다. 그만큼 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 게 일상이 된 걸까. 연필과 펜 대신 (촬영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으로 완성하는 기록과 역사라니, 상상이 끊이질 않는다. '그 기록을 아래로부터의 기록이라 해도 될까? 그렇게 쌓인 대중의 일상과 데이터는 추후에 어떤 역사로 남을까?' 하는.

폰 카메라의 장점 중 하나는 카메라를 쥔 손의 방향 등을 바꾸지 않고서 터치 한 번만으로 줄곧 촬영자 앞으로만 향해 있던 렌즈를 촬영자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거다. 이를 활용한 나만의 독특한 촬영법도 하나 갖고 있다.

렌즈를 촬영자 방향으로 향하게 한 사진, 간단히 말해 '셀카'를 찍으려고 카메라 어플을 실행했을 때를 떠올려 보자. 그때 렌즈의 방향이 일반 카메라처럼 촬영자(나)의 앞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러고 그 앞에 별다른 피사체나 풍경은 보이지 않고 아주 가까이 놓인 벽이나 오브제의 색상만이 흐릿하게 렌즈에 비친다면! 그때 곧바로 셀카 모드 버튼을 누르기 전에 흐릿하게 어느 색상만이 담긴 그 장면을 찍는 거다. 그리고 나서 원래 찍고자 했던 사진을 찍는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둔 두 장의 사진을 갤러리에 담는 거다.

거꾸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풍경을 찍고팠는데 잽싸게 실행시킨 카메라 어플이 셀카 방향이라면? 풍경을 찍어야겠다며 렌즈가 비춘 내 모습을 무시하고서 렌즈 방향을 앞으로 돌리지 않고 셀카 한 장을 괜히 찍어 보는 거다. 그다음에 원래 찍고자 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미는 거다.

한 장에 그칠 뻔한 사진을 두 장의 이야기로 기록하는 것.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의도치 않게 특정 상황을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느 풍경 속의 색, 빛, 질감을 세게(?) 클로즈업해서 잡아내고, 그때 그 색, 빛, 질감을 마주하던 내 표정도 함께 담을 수 있다. 어떤 표정을 지으려 했던 내 모습과 함께, 그 표정을 유도해 낸 눈앞의 풍경을 같이 기록할 수 있다. 숲을 찍으려 했다면 나무를, 나무를 찍으려 했다면 숲까지도 보게 되면서 촬영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바쿠스를 감상하는 짝꿍의 모습을 담으려다가 미술관 측에서 연출한 전시실 내부의 벽, 그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의 온도까지도 함께 간직하는 것!

계획에 없던 장면이고 용량을 잡아먹는 기록인데도 마음에 드는 건, 사진이 담아내지 못한 촬영 당시의 상황이 두 장의 사진으로 좀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토록 그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던질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 때문이고, 그 덕에 생각의 동굴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록과 질문,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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