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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11. 2020

43. 별점을 믿지 못하고 감행한
조금은 별난 여행

미사일 기지에서 레지던시 뮤지엄으로

17.01.31 화요일


좀 특별한 독일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독일 서북부 지방 여행에서 가장 북단으로 가본 게 쾰른이었는데, 오늘 기록을 경신했다(뒤셀도르프와 노이스까지 올라가 보았다!). 기록 경신과 더불어, 노이스(Neuss)의 자그마한 마을 홀쯔하임(Holzheim)에 들러 '홈브로이 인젤 뮤지엄(Hombroich Insel Museum: 홈브로이 박물관 섬)'을 다녀왔다. 학부 시절 독일어 캠프에서 알게 된 '독일어 팸(독일어를 공부한 친구들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친구 O와 함께였다. 유학 생활 중에 한국 친구를 만나니 눈물이 왈칵 났다. 


지극히 한산하고 한적하고 자그마한 홀쯔하임 역 풍경


홈브로이 인젤 뮤지엄은 예전에 NATO의 미사일 기지가 있던 자리에 새로 새워진 문화 공간이다. 공원인 듯 미술관인 듯 작업실인 듯 이름 그대로 '섬(Insel, [인젤])' 같은 독립 문화공간인데, 나 같은 방문객에게는 '사람이 붐비지 않는 별난 관광지'였지만, 레지던시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예술가들에게는 삶의 터전인 셈이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곳이었는데, 때마침 보그(Vogue) 블로그에서 홈브로이 인젤 뮤지엄의 카페를 유럽의 숨은 카페 명소들 중 하나로 소개해 주기도 하여서 더 기대가 되던 참이었다.


홀쯔하임 역에 내린 우리는 모험가 정신을 장착하고서 약 40-50여분을 걷고 또 걸었다. 차만 지나다니는 도로 가를 씩씩하게 걷다 보니 드디어 반가운 표지판이 보였다. 왼쪽으로 꺾으면 뮤지엄이라고 했다. 한국의 어느 동네 뒷산같은 풍경이 펼쳐졌고 그곳에 자그마한 컨테이너 박스 매표소가 있었다. 직원 아주머니께 인사를 건네며 '우리 걸어왔어요!' 하니 눈이 동그라지셨다. '그 거리를 걸어왔다고?' 하며 놀라는 눈치셨다. 


드디어 입장하게 된 홈브로이 인젤 뮤지엄!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오묘한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이 방치된 공원인 건지, 동물원인 건지(웜벳 같은 것과 큰 새가 돌아다녔다. 놀란 나머지 후닥닥 전시실로 달리기도 했다), 처음엔 구분이 잘 안 갔다.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걷는 곳이 곧 작업 공간이자 전시 공간이 된 듯했고, 자연과 전시실 간의 경계가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어 뮤지엄에 들어오는 순간 예술의 늪으로 풍덩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을씨년스러운 독일 겨울 날씨가 으스스한 전율까지 더해주니 어느 크리미(Krimi: 범죄 추리소설을 일컫는 독일어)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이제 막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크리미. 긴장감이 가득한 크리미 그 자체였다.



뮤지엄까지의 가는 길이 좀 험난하긴 했다.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게 다소 아쉬운 점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보이는 뮤지엄의 전경(우)과 첫번째로 마주한 전시 공간 건물(좌)
전시공간 사이사이 공원을 지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도중에 새집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고, 이곳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마주치기도 한다.
보그지에서 소개했던 카페 내부 모습(좌, 우). 따뜻한 음식과 과일이 무료로 제공되는 대신, 사과 박스 옆에는 뮤지엄 카페 운영을 위한 기부함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뮤지엄을 1시간 반 정도 즐긴 뒤 O와 나는 독일의 겨울 추위에 몸이 꽁꽁 언 몸을 카페에서 녹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갈 생각에 따뜻한 커피를 더 마셔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색다른 경험 했다 그지?" "그러니까. 정말 색달랐어." 하는 대화만 몇 번이고 하고서는 이대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걸 조금 아쉬워했다. 그리고 재미난 결론에 다다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여기 왜 많이들 안 오는지 알겠어."

"그러니까. 여행 책자의 별점 시스템이 그렇게 신뢰하지 못할 건 아닌가 봐."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인파를 피해 여행 코스를 짜보는 건 정말 모험이에요. 하지만 그 코스가 꽤나 괜찮았다면 만족감이랄까, 뿌듯함은 배가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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