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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12. 2020

44.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 먹고도!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  한 번쯤은 있어야

17.02.02 목요일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일지를 쓰듯 딱딱하게 기록해봐도 좋을 만큼(어디 한번 그렇게 적어보자), 매 순간이 기쁨이었다.


아침

선크림만 훅 바르고서 얼른 기숙사를 나섰다. 벨기에 우체국 b post에서 지난날 우체통에 넣어둔 영수증 두 개를 가방에 챙겨 넣은 상태였다. 영수증에는 "소포 두 개를 맡아두고 있으니 우체국에 와서 이 영수증을 보여주고 찾아가라"라고 적혀 있었다. 기숙사 건물에서 기숙사생들의 소포가 끊이질 않자 우편물/소포 보관 서비스를 중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누가 소포를 보냈을지 궁금해하며 우체국으로 거의 달리다시피 했다. 도착해 품에 안고 온 소포들은 한국에서 친구들이 보내준 선물들이었다. 이제 막 출시된 카레 신제품들과 한참 유행 중이던 즉석 라면들, 과자, 참치 통조림, 그리고 질 좋은 한국 문구 용품까지!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들이었지만 벨기에에서 이 물건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하나하나 참 귀했다. 이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사랑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아침부터 라면을 끓였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은 정말이지 큰 감사다. 


점심

카톡으로 대뜸 임용고시를 여러 해 동안 준비하던 친구 Y의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움츠러들었을 Y의 자존감이 다시 활짝 필 수 있을 것 같아 속이 다 후련했다. 교육자가 되기에 충분한 Y의 첫 출근을 진심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Y의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촌동생 N으로부터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어쩜, 연애도 나보다 빠르더니 취업 소식도 언니보다 빠르다 내 동생.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 술잔을 기울이고 하이힐을 챙겨 신는 걸 지켜보니 기분이 묘하다. 훌륭하다 내 동생!


저녁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브뤼셀로 향했다. M이 집으로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방문하는 친구의 집인 만큼, (굳이) '한국식으로' '고급 티슈 세트'를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살아본 M이기도 하고 한국학 박사과정을 생각할 정도로 한국에 관한 애정이 넘치는 m이었다. 집들이 선물로 티슈를 건네며 한국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해줄 수 있다면 티슈가 그저 티슈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다 하하). 이제 막 이사를 마친 M의 보금자리에는 아직 빈 공간이 많아 보였다. 이 곳에 책장을 놓고 저곳에 미니 소파를 놓을 거라며 말하는 M의 표정이 참 즐거워 보였다. 요즘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진 M은 어제저녁에  만들어 본 시금치 키슈(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한 파이 요리)를 내게 권해보았고, 나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방금 함께 만들어 먹은 라비올리를 잊고서 키슈 한 접시를 해치웠다. 그러고 나서 몇 잔의 차와 쿠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넷플릭스라는 스트리밍 채널을 소개받고서 최근에 본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로 수다 꽃을 피웠다. 



정말이지, 뭐 이런 하루가 다 있단 말인가.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정말.


친구들의 소포 선물(좌)과 M이 직접 만들었다는 키슈(우)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언제나 기쁨으로만 가득할 수 없는 게 우리들의 일상이겠지만, '한 번쯤은 그런 날도 있어야지'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날을 의식하고 있다 보면 실제로 그 날을 마주했을 때 더 반갑달까. 기다린 만큼 더 후련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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