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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13. 2020

45. 헝그리 정신 말고, 풀(full) 정신도 필요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밥 한 끼, 식사 한 번

17.02.20 월요일


퀴노아와 렌틸콩을 흰쌀밥에 섞어 먹어 보고 있다. 오늘로 이틀 차이다. 꼬들꼬들한 식감이 마음에 든다. 그 덕에 좀 더 씹고 삼키게 된다. 식사 시간 때마다 찬장에서 꺼내는 것은 설거지를 줄여보고자 한국에서 (굳이) 들고 온 식판이다. 세 가지를 담을 수 있도록 (다소 이상하게) 설계된 이 식판은 지금껏 몇 번이나 내 끼니를 담아내 주고 있다. 편 마늘과 함께 끓여낸 시금치 된장국을 담아낸다. 아쉽게도 두부는 없다. 하지만 뒤늦게 고춧가루라도 솔솔 뿌려보니 나름 그럴싸하다. 디저트로 먹을 석류를 비어있는 식판 한편에 두기로 한다. 조금 투박하지만 석류 본연의 모습을 예뻐 보여 석류 하나를 통째로 식판에 얹는다. 자급자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유학 생활 중, 이 정도 한 끼 식사라면 꽤나 훌륭하다면서 스스로를 칭찬한다. 수저를 드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퀴노아와 렌틸콩(Linzen)을 한 봉지씩 사서(좌) 식판에 한 상 차려 내면 그걸로 식사 끝(우)!
밸런타인데이라고 하트 투성이(?)가 되어 버린 학식당(Alma 2)의 수프 가판대.


2학기 불어 수업을 등록하려(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베르나데뜨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계획이다)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뤼벤 어학 센터인 CLT를 찾았다. 그전에 학식당(Alma 2)을 찾아 귀퉁이에 위치한 수프 코너에서 따뜻한 수프 한 그릇가득 퍼 담아 먹었다. 쌀쌀한 날씨에는 아무래도 수프 만한 게 없다. 0.5유로를 추가하면 바게트 빵도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으니 꽤나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수프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 분명 뜨거운데 '시원하다'라고 표현하는 국물, 한국식 수프가 줄 수 있는 포근함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기숙사에서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게 된 것은 다 수프 때문이다.


평소 요리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오늘처럼 한 상을 뚝딱 차려내는 나를 근래에 자주 마주한다. 놀랍다. 무슨 일인가 싶다.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드시오'라면서 극 중 인물에게 위로를 건네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속 한 대사가 생각이 난다. 마치 그 대사를 하던 인물을 닮은 누군가(요리 세포와도 같은 누군가)가 내 안에 사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그 누군가 최근 들어 학식당에서 줄곧 수프만 홀짝이는 나를 보고선 '주인(나)을 좀 더 챙겨줘야겠어'하고 결론을 내리고선 내게 요리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주방을 들락날락 할리가.


그러고 보면 배고픔만이 무언가를 추진하게끔 하는 원동력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배고픔 못지않게 어느 정도의 배부름 또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마음이 유해지도록 돕는다. 그러니 결론은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거다. 시금치 된장국 하나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타지 생활을 하는 중에는 더더욱!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밥 한 끼, 식사 한 번이 줄 수 있는 힘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2020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엔 세계 식량계획(WFP)의 상징성도 따져보게 되고, 함께 밥을 나누는 사람의 소중함, '식구'라는 말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등에 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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