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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16화. 넘겨받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면 약이 오를 때가 많아. 그렇게 요란스럽더니 어느새 맑고 멀끔해져 있잖아? 반문하게 되지. 어제의 소동은 무엇이었냐고. ‘간섭의 그날’ 이후도 마찬가지였지. 기껏 작업해 놓은 조각 반죽이 망가진 것도 모자라 갈매기가 집을 나가다니. 조각가도 아침이 다 되도록 돌아오질 않고. 신문 배달부 청년이 맨발 차림으로 정신을 잃고 바닷가에서 비틀대던 조각가를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청년은 방파제 위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증언했어. 조각가는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상태였는데도, 용케 모래사장 위에 머무르고 바닷속에 들어가진 않았대. 그래도 워낙 날씨가 험했던 때라, 자기가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했더라면 저체온증이든 뭐든 꽤 앓았을 거라고 하더라. 청년은 가장 먼저 이장님에게 전화를 걸었어. 새벽 내내 깨어 있던 사람처럼, 핸드폰을 늘 옆에 두고 주시했다는 듯이, 이장님은 전화를 빨리 받았지. 이장님은 구급대원은 따로 부를 테니 미안하지만, 자신의 집까지 조각가를 데려다줄 수 있냐고 물었어. 청년은 머뭇거렸지. 까딱하면 신문 배달이 밀릴 수도 있는 요청이었거든. 그러자 이장님은 곧이어 사람 하나를 바닷가로 보낼 테니, 그때까지만 배달을 잠깐 미뤄두고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 청년도 그 정도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 있다고 했대.


  한 15분 정도 지났으려나? 이장님이 보낸 사람이 모래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청년에게도 다가왔어. 금귤 아저씨였어.


  “바쁜데 미안하네. 이장님이랑 같이 잘 보살펴 주겠네. 할머님은 잘 계시나?”


  금귤 아저씨는 홍가리비처럼 발그레한 양 볼을 씰룩이며 청년에게 감사 인사를 했지. 그리고 배달 자전거 옆에 간신히 몸을 기대고 앉은 조각가를 넘겨받았어. 잠에 빠진 것도 기절한 것도 아닌 상태의 성인 남자를 어깨에 짊어지자, 무릎 연골 쪽이 시큰했지. 기합을 한 번 크게 넣고 가까스로 조각가를 미니 트럭의 조수석에 태웠어. 그리고 곧장 이장님 댁으로 향했지. 금귤 아저씨는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는 척하면서 조각가를 슬쩍 쳐다보았지. 조각가는 두 눈을 꾹 감고서 손가락만 쭈뼛쭈뼛 움직이고 있었어. 보통 상태는 아닌 거 같았어.


  “젊은 외지인이 상태가 어찌 이런가?”


  어른답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호통을 치기도 했지. 그런데도 조각가는 눈을 뜨지 않았어. 그런데 그 모습이 금귤 아저씨에겐 꼭 자는 척하는 손주 같았지. 그 모습이 금귤 아저씨 눈엔 꽤 귀엽게 보였는지, 기분 좋을 때에만 한다는 혼잣말이 술술 나왔어.


  “기인이라고, 우리 손주가 있는데, 밤마다 자네처럼 꼭 그렇게 자는 척을 하네. 어른들이 일찍 자라고 하는 시간에 깨어 있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잠자리를 확인하러 오는 어른들에게 칭찬은 또 받고 싶어 해. 어린애지 참. 한참을 부스럭거리다가도 우리 집사람이 이불 덮어주러 방에 들어오는 소리를 내면 눈을 질끈 감지. 근데 그 눈매가 누가 봐도 신맛 제대로 나는 금귤 하나 베어 물었을 때 찡그리는 표정이거든.”


  금귤 아저씨는 이장님 댁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이 나오자 핸들을 미세하게 틀었지. 작은 시골길 도랑에 트럭 바퀴가 빠지려는 찰나에 기가 막히게 방향 전환을 했어.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자넨, 눈을 뜰 수 있는데 일부러 감고 있는 거 같단 말일세. 기인이 그 녀석처럼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지. 그런데 들키고 싶진 않고.”


  그 말에 조각가는 아까 전보다 손가락을 조금 더 크게 까딱하고 움직였어. 금귤 아저씨는 운전 중이었지만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지. 조각가가 자신의 말에 긍정하고 있다고 받아들였어.


  “하지만 젊은이, 무언가를 하고 싶더라도, 몸은 챙겨가면서 해야 하는 거야. 밤새 그곳에 나와 있으면 어떡하나, 더구나 태풍도 심했는데. 무얼 하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이쿠!”


  금귤 아저씨의 혼잣말이 훈계조로 바뀌자, 조각가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어. 그러는 사이, 미니 트럭은 이장님 댁에 도착했어. 전조등 불빛 너머로 잔뜩 울먹이며 달려 나오는 작은 형체의 그림자가 보였어. 현서였지. 어찌나 이쁘고 처절하게 울던지 조각가를 데려다준 금귤 아저씨가 머쓱할 정도였지. 악몽을 조심하라더니 아저씨야 말로 밤새 무슨 꿈을 꾼 거냐면서, 왜 눈을 뜨지 않느냐면서, 펑펑 울고 있었어. 현서가 자기 윗도리 끝을 잡아당기며 울부짖는 동안에도 조각가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지.


  금귤 아저씨의 귀여운 참견에만 반응하던 조각가의 손가락은 현서에게 유독 친절했어.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고 두 손을 꼭 모아 고정해 주는 등 조각가는 온몸으로 현서에게 반응해 주었지. 곧 부서질 것처럼 우는 현서 뒤로 이장님이 걸어 나왔어. 금귤 아저씨와 이장님은 가볍게 눈인사하며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았지.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네.”


  이장님이 이렇게 말했고


  “기다리지.”


  금귤 아저씨가 이렇게 답했어.


  미니 트럭은 골목을 들어올 때와 달리 천천히 후진해서 나갔어. 현서는 열심히 우느라 얼굴이 퉁퉁 불어버렸지. 조각가는 눈을 질끈 감고서 그런 현서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어. 이장님은 잠자코 두 사람을 바라보았지. 세 사람만이 덩그러니 마당에 서 있었어. 일전에 갈매기와 현서, 조각가가 광장을 찾아 이뤄냈던 일직선의 비상, 그 평화롭고 빛나는 풍경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장님은 뒷짐을 지더니 입을 뗐어.


  “녀석아. 이래 보여도 소문이 쉽게 생기고 빨리 도는 마을이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현서야, 아저씨 손 꼭 잡고 오너라.”


  이장님이 말했고,


  “…….”


  조각가는 별다름 없이 손가락을 까닥이며 현서를 붙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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