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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15화. 시작하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갈매기 마을이라고 알지? 개다리소반 장인들이 모여 사는 바다마을로 이름처럼 갈매기 떼의 비행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야.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21세기 시민 환경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동네인데, 원래는 소박한 장인들이 모여 화려한 작품을 만드는 곳이었지. 마을 형성 초창기에는 주민 수의 절반 이상이 장인들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주 극소수만 살고 있지.


  장인이라고 하면 괜히 전통을 고수하려고 조금은 꽉 막히게 행동할 것 같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야. 장인들은 철저히 개다리소반의 옛 레시피를 따르고 있어. 하지만 소반의 마지막 장식으로 들어가는 자개 장식에 관해선 비교적 마음이 열려 있지. 외국산 조개를 국내산 조개와 섞어 사용하기 시작했거든. 원래 자개 공예라는 건 국내산 조개를 사용했을 때 특유의 오색영롱한 빛깔을 내기 쉬워. 빛에 비춰보면 무지개가 뜰 것 같은 그런 빛깔이지. 문제는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600여 종의 조개 중에서 개다리소반의 재료로 쓰이는 건 다섯 종류 정도가 전부로 재료 수급에 값이 꽤 나갔지. 반면에 수입산 조개는 면적이 작아 효용 가치가 좀 떨어지는 편이었어.


  갈매기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1 가정, 1 개다리소반”이라는 캠페인이 유행했어. 언론에서 작고 낮은 개다리소반 주변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가정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지. 가족 간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그를 해결할 도구로 개다리소반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거든. 갈매기 마을이 환경 운동으로 유명해진 것과 레트로 열풍과 맞물려서 국민들의 반응도 좋았지. 이런 상황에서 장인들은 생각했지. 재료로서의 미적 효과는 조금 떨어지지만 외국산 조개를 섞어서 작품을 만들면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싼값에 좋은 물건을 만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개다리소반을 곁에 두고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가격 경쟁력에다가 갈매기 마을이라는 지역 브랜드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개다리소반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금귤 아주머니와 아저씨네는 외국산 조개를 조달하고 저장해 두는 창고를 운영하면서 사업을 키웠어. 이전엔 지인들만 몇 명 사주는 금귤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수입산 조개 사업을 하면서부턴 꽤 영향력 있는 주민이 되었지. 서글서글한 인상의 금귤 아저씨는 갈수록 인기가 많아졌지. 해수 오염과 갈매기 생태계 파괴로 갈매기 마을이 골골댈 때 묵묵히 회복 사업을 펼치던 현서네 할아버지의 명성을 위협할 정도였지. 차기 이장 선거에 금귤 아저씨가 출마할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어. 금귤 아주머니가 이 집 저 집 금귤 소쿠리를 들고 다니면서 떠들었기 때문이었지. 어디까지나 금귤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금귤 아저씨는 이장직을 발판 삼아 지역 유지로 발돋움할 야망을 품고 있었어. 하지만 금귤 아주머니는 말을 떠벌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고, 소문을 낸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지.


  하숙집 아주머니도 금귤 아주머니의 말을 좀처럼 믿지 않으려는 사람 중 하나였어. 하지만 그렇다고 금귤 아주머니의 말에 휘둘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다정하고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었어. 조금이라도 해석의 여지가 있는 말을 들으면, 그게 설령 지나가는 말이었을지라도 “정말 괜찮은 걸까?” 하고 되묻는 습관이 있었거든. 조각가에게 창고를 작업실 겸 방으로 내어주고 옆에서 갈매기 마을 살이를 도와줄 때도 마찬가지였어. ‘끼니만 챙겨줘도 되는 걸까? 갈매기 녀석이 새우과자만 먹도록 내버려 둬도 될까? 이장님이 다른 집도 아닌 우리 집을 하숙집으로 선정했을 때, 어느 정도 조각상 작업에 간섭하라는 뜻은 없었을까? 애초에 어디서부터 간섭이고, 어디까지가 챙겨주는 걸까?‘


  한 가진 확실했어. 폭풍우가 치던 그날, 조각가도 없는 방에 들어간 건 간섭이었지. 그것도 피해가 뒤따른 간섭이었어. 조각가가 애써 빚어놓은 반죽 같은 걸 망가뜨렸으니까. 사람은 아니었지만, 목격자도 있었지. 조각가와 함께 나간 줄로만 알았던 갈매기였어. 날개를 늘 접은 채로 걸어 다니는 녀석이긴 했지만 늘 뽀얗고 단정했던 녀석이었는데, 그날엔 또 무시무시하게도 굳은 핏자국을 날개 깃털 사이사이에 숨기고 있었지.


  안 그래도 새가슴이었던 하숙집 아주머니였는데 피비린내 나는 갈매기를 보자 꼼짝없이 몸이 얼어버렸지. 사람이라면 입막음이라도 했겠지. 하지만 말 못 하고 날지도 못하는 짐승에겐 그런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대. 그런데 또 갈매기의 눈을 바라보자, 생각이 바뀌었대. 이 갈매기는 보통 갈매기가 아니었지. 창고 구석,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며 하숙집 아주머니를 바라보는 게, 마치 카메라 녹화라도 하는 듯했어. 조각가가 돌아오면 하숙집 아주머니를 콕 집어서 지금 벌어진 일을 일러바칠 거 같았지. 비가 세게 내렸어. 창고의 벽과 지붕, 창문을 골고루 때렸지. 갈매기 마을의 하늘이 하숙집 아주머니의 자백을 강요하는 것 같았대.



  ‘이걸 어쩐다!‘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하숙집 아주머니의 핸드폰 화면이 밝게 빛났어. 누군가 전화를 걸어온 모양인데, 발신자 표시제한이 떠 있었지. 하숙집 아주머니가 핸드폰에 눈이 팔린 그때였어.


  탑탑탑탑


  갈매기가 창고 구석에서 뛰쳐나와 문으로 돌진했지. 하숙집 아주머니가 막을 새도 없이 갈매기는 바깥으로 나갔어. 그리고 핏자국이 빗물에 절로 씻겨 나가는 비바람을 뚫고 어기적어기적 날아올랐어. 조각가가 이야기하던 위용 있는 비행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두 발을 땅에서 떼고 날개를 움직이고 있었어. 날개 한쪽을 다친 탓에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었지만, 강한 비바람이 갈매기의 날개 죽지를 세게 밀어 올려주었어.


  갈매기가 날기 시작했어.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조각가의 옆에 있질 않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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