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현서는 조각가의 등에 업혀 있는 동안 단잠을 잤던 모양이야. 평소 취침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이장님이 덮어준 이불 아래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지.
“현서야. 늦었는데 어서 자야지.”
“할아버지, 오늘 잠은 다 잔 거 같아요.”
“조각가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는 건 괜찮지만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아저씨는 여기 일하러 온 사람이잖니.”
“하지만 할아버지, 갈매기가 저에게 분명 도와달라고 했어요.”
“갈매기가 너에게?”
한두 마디 섞다가 거실로 돌아갈 줄 알았던 이장님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자, 현서는 본격적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앉았어. 영락없는 골목대장의 눈빛이었지. 하지만 평소와는 달랐어. 좀 더 차분하고 결연한 분위기였지.
“아저씨는 갈매기 마을에 생기는 조각상이 갈매기인 게 너무 뻔할까 봐 걱정했어요. 걱정이 너무 많아서 작업실에서 나오질 않고 있었죠.”
“녀석은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
이장님도 현서를 따라 나비 다리를 하고 이불 위에 앉았어.
“그 아저씨는 말이다, 누군가의 부탁에 매번 특별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좀 과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해야 이 할애비가 선생으로서 이런저런 말을 해 줄 텐데, 좀처럼 틈을 안 주었지. 성적은 아주 좋았어. 하지만 그런 거에 비해 학교 밖으로 나가 재능을 뽐내질 않았지. 그때마다 이 할애비가 불러내서 일을 줬단다. 방에 틀어박혀선 자기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거절을 한 적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 갈매기 마을의 조각상 건은 곧바로 수락하더구나. 내 제안을 받고 마을에 관한 걸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티비에서 환경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단다. 거기서 기름 둥둥 떠 다니던 물이 파랗게 변하는 걸 빠르게 보여줬는데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더라. 그러더니 덜컥 이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겠니?”
“덕분에 아주 특별한 갈매기도 만났고요!”
“맞다. 특별한 녀석이 특별한 갈매기를 만났지.”
이장님은 비밀 얘기라도 꺼내는 듯 등을 웅크리고 현서에게 귓속말로 말했지.
“사실 말이다, 현서야, 우리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할애비도 괜한 욕심이 생겼단다. 유명한 마을의 유명한 이장이 되고 싶었는지, 녀석이 부담스러워할 걸 알면서도 조각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지. 특별한 답을 내놓는 데 재능이 있는 녀석이니까 조각상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만 한다면 정말 멋진 작품이 나올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힘들어하고 있었다고 하니, 스승으로서 참 부끄러워지는구나. 괜한 부탁을 했나 싶고.”
이장님은 손바닥으로 무릎이 접힌 부분을 문지르면서 머쓱함을 표현했어. 현서도 이때다 싶어서 이장님의 귀에다 귓속말하기 시작했지.
“할아버지, 오늘요, 하숙집 아주머니가 아저씨 작업실에 들어가려고 하셨거든요? 근데 그때 제가 아저씨 집에 딱 도착한 거예요. 그리고 딱 그때 갈매기가 저를 마중 나왔죠. 다른 사람들 눈은 보지도 않고 제 눈만 보고서 끔뻑끔뻑, 몇 번을 그러고 있더라고요. 바로 알았죠. 도와달라는 말이라는 걸요.”
“그래서 들어갔더니 어떻더냐?”
이장님의 물음에 현서는 다시 똑바로 앉아서 풀이 죽은 채 말을 이었지.
“아저씨가 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전 알아요. 우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들키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거. 그래서 일단 문부터 닫았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아저씨의 그런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될 것 같았어요.”
“우리 현서가 조각가 아저씨랑 아주 친한 모양이구나.”
“아저씨랑 저는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거든요. 제가 최근에 그 비밀을 친구들한테 말하는 잘못을 했지만요. 학교에서 현장학습 가는 것처럼 아저씨랑 갈매기랑 다 같이 광장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갈매기가 왜 특별한지 조금 보았어요. 와. 그렇게 멋있게 날 준비를 하는 갈매기라니, 정말로 난다면 더 멋지겠죠? 아저씨가 그 특별함을 조각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어요.”
이장님은 무릎을 쓸어내리던 손바닥을 멈추고 현서의 말을 잠잠히 들어주었어.
“그런데 아저씨가 악몽을 꿨대요. 꿈속에서 특별한 걸 잃어버렸대요. 제가 말했어요. ‘그래도 그건 꿈이었잖아요 아저씨.’하고서요. 그런데 잠에서 깼더니 꿈속인지 밖인지 잘 모르겠더래요. 그러다가 실수로 갈매기를 밟고 넘어졌대요. 그것 때문에 갈매기가 많이 다쳤어요.”
“저런!”
“피가 많이 났어요. 아저씨는 꿈이 현실이 되었다면서 계속 울었던 거 같았죠. 눈이 퉁퉁 부어 있었어요. 갈매기랑 같이 아저씨의 등을 토닥여 드렸어요. 그리고 광장에서 아저씨가 이거야 하면서 기뻐했던 조각상 포즈를 일부러 얘기해 주었죠. 갈매기가 다치긴 했지만, 옆에 이렇게 있지 않느냐고 말해주었어요.”
“아주 잘했구나.”
이장님은 현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
“근데요 할아버지, 특별한 걸 찾은 뒤에 아저씨는 더 불안하다고 말했어요. “
“…….”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제가 뭔가 더 했야 했을까요?”
“현서는 현서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단다. 아까 널 집에 데려다줄 때 아저씨 모습은 몇 시간째 울고 있던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거든. 차분해 보였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 할애비가 직접 만나러 가봐야겠구나. 일을 맡겨놓고 너무 내버려 둔 게 녀석을 더 불안하게 한 것 같기도 하고.”
이장님은 작은 곡소리를 내면서 무릎을 짚고 나비다리를 풀었어.
“그래도 이제는 정말 자야 한다 현서야. 벌써 열두 시가 다 되어 가질 잖니.”
“아저씨가 괜찮았으면 좋겠어요. 갈매기도요.”
“그래. 할애비가 가서 보고 오마. 괜찮을 게다.”
이장님은 현서가 이불을 다시 덮고 눕는 걸 끝까지 보고서야 방을 나섰지. 문지방을 밟으려는데 현서가 이장님을 다시 불러 세웠어.
“할아버지!”
“왜 그러느냐?”
“악몽을 조심하세요.”
찌륵하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천둥소리에 묻히고 이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닫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