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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12화. 확인하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창고 바닥은 고르지 않았어.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기 쉬웠지. 그런데도 하숙집 아주머니는 뒷걸음질을 쳤어. 두 발을 딛고 선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거든. 핸드폰 액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과 폭풍우로 흐릿해진 달빛이 그나마 정신 줄을 부여잡게 해 주었어. 하숙집 아주머니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일어섰지. 갈매기는 휘청이는 침입자를 지켜보며 눈을 끔뻑였어.


  “아니, 너 왜 여기 있니?”

  “꾸르?”


  하숙집 아주머니가 말을 걸자, 갈매기는 작업 테이블 밑에서 슬그머니 나왔어. 그런데 어쩐지 평소처럼 탑탑탑탑 하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지. 아주머니는 어둠에 적응한 눈을 가늘게 뜨고 시야의 해상도를 높였어. 그제야 보였지.


  기어 나오는 갈매기의 왼쪽 날갯죽지 밑으로 피가 말라붙은 흔적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각가가 평소 곱게 빗질까지 해가며 관리하던 깃털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잔뜩 흐트러져 있었지. 언제 다친 걸까? 현서가 들어가기 전? 아니면 그 후? 출혈로 깃털이 덩어리 져 굳어 있는 걸 보니 방금 다친 것 같진 않았어. 한쪽 날개만 다쳤는지 뒤뚱거렸지. 아무래도 깃털이 피로 굳어서 무거운 모양이었어. 갈매기는 몸이 왼쪽으로 기운 채 땅을 밟았지. 그러자 물갈퀴 할퀴는 소리와 창고 바닥의 거친 표면이 마찰력을 일으켰어. 꼭 낡은 수레가 걸어 나오는 장면 같았어.  


  하숙집 아주머니는 매우 난감했어. 조각가의 방에 몰래 들어온 것도 모자라, 작업에 방해가 되었고, 그 모든 걸 지켜본 갈매기를 직접 마주했으니, 현행범이 된 기분이었지. 하지만 피 흘리는 짐승을 모른 척할 순 없었어. 그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조각가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손으로 갈매기를 들어 품에 안아보려 했어. 새를 치료해 본 적은 없지만 생명을 돌보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아주머니가 갈매기에게 손을 뻗자 갈매기가 헛부리질을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계의 메시지처럼 보였어. 갈매기에게 허락된 사람의 손은 조각가의 손뿐이었던 걸까? 아니면 제아무리 하숙집 아주머니라도 조각상을 망가뜨린 범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되었건 아주머니의 손길을 향한 갈매기의 대답은 거절이었어.


  “착하지, 갈매기야, 나야, 집주인아줌마, 우리 서로 모르지 않지?”


  집 나간 고양이를 달래듯 하숙집 아주머니가 자세를 갈매기 눈높이로 낮추었어. 하지만 그럴수록 갈매기는 부리질을 더 세게 해댔지. 컵컵컵컵. 위와 아래 부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꽤 공격적으로 들렸어. 접힌 왼쪽 날개와 제기능을 원활히 하는 오른쪽 날개도 퍼덕거렸지. 때아닌 날갯짓에 창고 바닥 구석구석 쌓여 있던 먼지들이 바람처럼 일어났어. 먼지를 뒤집어쓰자, 아주머니의 코가 근질근질해졌어.


  “아이고, 녀석 참, 이리 오래도! 에-엣 취!”


  하숙집 아주머니는 기침을 참다가 크게 내지르고 말았지. 그런데 그 소리에 갈매기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어. 꽥 소리를 지르다 작업 테이블 아래쪽을 이마로 툭 치고 말았지. 갈매기의 소리에 아주머니도 덩달아 놀랐어. 혹여 갈매기가 더 어두운 구석으로 도망갈까 봐, 아주머니는 어둠에 적응한 두 눈만 믿고 작업 테이블 밑 구석으로 팔을 불쑥 집어넣었어. 뭉툭하고 부드러운 무언가 손에 잡히는 걸 보니 갈매기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팔을 다시 작업 테이블 밖으로 끄집어냈어.


  이럴 수가, 작업 테이블을 덮고 있던 식탁보의 안쪽 귀퉁이를 잡아당겼지, 뭐야. 갈매기는 이미 창고의 구석으로 도망친 뒤였지. 그리고 아까 반쯤 뭉개버렸는지 망쳐버린 건지 모를 조각 반죽이 바닥으로 떨어졌어. 망연자실한 모양새가 꼭 하숙집 아주머니 같았었지.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덜 망가졌었는데, 방금 움직임으로 제대로 망가져 버렸어. 눈물만 안 흘렸지, 하숙집 아주머니도 갈매기도 대성통곡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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